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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Apr 29. 2024

무능력한 팀장이 되고 싶지 않아

일을 시작한 지 이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난,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기존에 했던 일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말랑말랑한 아이디어를 내기보다 딱딱한 언어로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직까진)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입사하자마자 팀장이 되어 팀까지 이끌어야 했다. 팀원들은 나와 달리 과업의 이해도가 높았고 관련 경력도 있었다. 잘 모르는 분야에 팀장이라니,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회의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멍했다. 순간 한 사람이 생각났다.


회사 다니면서 무능력하다고 느끼던 사람(팀장)이 있었다. 업무 지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컴퓨터만 뚫어지게 보며 "내가 없으면 이 회사는 돌아가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제품 타깃은 고려하지 않으며 오직 추측으로 제품을 만들면서 소비자와 팀원을 무시하기 바빴다. 당연히 매출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도 다른 팀원에게 그런 사람처럼 비칠까 봐 무서웠다. 무능력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 사이에 출장을 다녀오고 입찰 제안서를 썼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바빴다. 지금은 사업을 이해해야 했다. 마감일을 보며 '이틀만 버티면 돼. 이틀만'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뜨니 이주일이 지나있었다. 다행히 사업 제안서를 제출한 뒤로 업무의 흐름을 알 것 같았다. 바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아끼면서 업무 효율도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잘 이겨낼 방법을 찾고 있다.


예전에 한 드라마를 보고 운 적이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부족한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는 말이었다. 그땐 드라마 속 주인공에 이입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캐릭터 속에서 내가 보였던 거 같다. 나의 한계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걱정, 내가 상처받는 게 싫어서 미리 보호하는 자세 같은. 나도 내 무능력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눈앞에 있는 현실을 마주하기도 전에 포기하려 했다.


일이 힘들 거란 예상, 내가 상처받을 거란 두려움에 또 쉬운 선택을 할 뻔했다. 여기서 도망가면 나는 내 부족함을 마주할 때마다 무너지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부족함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다행히 팀원들과 대표님 성격이 너무 좋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잘 받아들이며 기분 상하지 않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모였다. 내가 찾은 이상적인 회사가 여기 있기에 이것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사실, 나는 나의 일을 하면 된다. 내가 모든 걸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팀원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기만 하면 된다. 내가 부족한 건 팀원이 채워줄 수 있고 팀원이 부족한 건 내가 채워줄 수 있다. 이런 게 호흡이 아닐까. (팀장이라는 직급 때문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지금 하는 일은 실수라고 할만한 일이 별로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칭찬받았다. 사실 이해되지 않았다. 난 한 게 없는데 잘했다는 칭찬이었다. 기가 죽은 게 보였던 걸까. 사업 이해도가 없는 사람치고는 눈치껏 빠르게 일을 해낸 거 같다는 말이었다. 칭찬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분 좋았다. 사실 팀원을 보면서 다들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 빼고. 대표가 나를 잘못 뽑았다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고 잘못 뽑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혼자 발버둥 쳤다. 지금은 적응단계라 조급해하면서 발을 동동 굴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다른 팀원이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여기 왔을 수도 있다. 그러니 계속 작아질 필요 없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주일을 보냈다.


초반에 말했던 팀장이 또 생각났다. 그 사람은 본인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상대를 탓하는 방법을 택했던 거 같다. 그러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나를 인정하면 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유지하되 조급함에 실수하지 않고 평소대로 열심히 하면서. 시간이 빨리 가는 걸 보니 이것도 곧 적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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