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Jul 01. 2024

시간에 기억이 쌓이는 기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샀다. 그냥 나가려다가 전자레인지에 삼각김밥을 30초 돌렸다. 30초 29초 28초…  그렇게 1초씩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렇게 1초가 쌓여 60초가 되고, 120초가 지나면 2분인데, 그동안 수많은 시간을 지나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20대 때는 시간이 흐르는 게 무서워서 강박이 생겼다. 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생기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군가의 지각으로 피해 보는 게 싫었고 내 늦잠으로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것도 싫었다. 하루마다 목표를 정해놓고 지키지 않을 때마다 나를 미워했다.


30초가 되기 전, 20초에서 전자레인지를 껐다. 10초를 아끼기 위해서라기보다 30초면 삼각김밥이 너무 뜨거워지기 때문에 딱 먹기 좋은 20초를 선택했던 것뿐이다. 편의점에서 나와 차를 탔다. 운전을 하다 정지 신호에서 삼각김밥 한 입을 베어 먹었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으면 편하게 식사했을 텐데, 내가 너무 게을렀던 걸까.



요즘,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마케터와 에디터 중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정한 직업이자 직장이었다. 오래 고민한 만큼 열심히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업무 시작 10분 전에 와서 드립커피를 내리고 오늘 할 일을 적어놓은 뒤 9시가 되면 일을 시작한다.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덕분에 회사에서는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 물론 시간도 빨리 갔다. 다만, 집에 도착하는 순간 피로가 몰려왔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침대에 누워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일어나야 하지만 내 몸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고 곧 알람이 울렸다. 9시였다.


양치를 하고 주방으로 갔다. 요리를 하려다가 배가 고프지 않아 서랍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냈다. 날짜 지난 것들이나 불필요한 것들을 버렸다. 청소를 하다 보니 잠에서 깼다. 물건을 버리고 청소한 덕분에 아침을 놓쳤을 뿐이었다. 게으른 게 아니라 나름 부지런했다.



남은 삼각김밥을 한 입에 넣었다. 두피케어 샵에 가려면 아직 20분이나 더 가야 했다. 전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머리숱이 많은 나였기에 탈모 걱정이 없었는데, 다들 내 머리를 보며 심각성을 알려줬다. 하수구에 쌓인 머리카락과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카락을 보고 바로 두피케어 샵을 등록했다. 토요일마다 두피케어를 받는다. 너무 이르지 않고 너무 늦지 않는 11시로 예약했다.


주차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대기했다. 내 이름을 불러준 선생님을 따라 관리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불편하신 곳은 없었나요?" "두피에 열이 오르는 거 빼곤 없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내 두피를 보면서 열감 집중 케어를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 편안한 의자, 안정감을 더하는 클래식 음악, 스트레스를 줄여줄 일링일랑 오일, 선생님의 손압 덕분에 지끈지끈했던 두통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네일아트하는 것도 돈 아깝다고 생각했던 내가 나에게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두피케어샵에서 주차 3시간을 지원해 줬다. 1시간 10분 정도 관리를 받았으니 약 1시간 30분 정도는 카페에서 글 쓸 시간이 있다. 혹시 몰라 챙겨 온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들어갔다. 잔잔한 팝송이 흘렸다. 아이보리 벽지와 우드 포인트 가구가 어우러진 이 카페에 있는 것만으로도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이스 라테를 마시려다 시그니처 메뉴인 대추 크림라테를 주문했다. 대추라니, 카페 분위기와 어울리는 시그니처 메뉴였다. 커피를 받고 노트북을 켰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적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until i found you' 나왔다.


예전에 혼자, 홍콩 여행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해 스트레스 쌓이던 때였다. 국내 여행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백만 엔 걸 스즈코'에 이런 대사가 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단 생각을 한 적 없어요?" 그때의 난 이런 마음이지 않나 싶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날, 즉흥적으로 홍콩 항공권을 예약했다.

특유의 홍콩 분위기에 매료되어 목적지 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 다리가 아파 눈에 들어온 카페로 들어갔다. 다들 대화를 나누거나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을 때, 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 'until i found you'이 나왔다. 뭔가 붕 뜬 기분이었다. 순간 이 시간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다시 돌아와 난 카페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다. 기억에 기억이 더해지고, 시간에 시간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던 적도 많았고 그 시간에 갇힌 적도 많았다. 다행히 거기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시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여러 시도 끝에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날이 왔다. 덕분에 마음 편한 상태로 내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가 따를 때가 있었다. 그런 후회가 싫었다. 선택도 쉽지 않았는데, 후회까지 해야 한다니. 그 뒤로 생각을 바꿨다. 머리 아프게 고민한 뒤 선택하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선택의 후회는 하지 말자. 어떤 선택이든 나를 탓하기보다 그 선택이 최선이었고 생각한다.


매주 토요일에 에세이를 쓴다. 시간을 정해놓으니 또 강박이 생긴 건가 싶었지만, 이는 강박과 다른 마음이다. 안정적인 내 주말 루틴이라고 해야 할까. 글을 쓸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마 내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이라 그런 게 아닐까? 쓰고 싶은 글이 없어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가다 보면 '아 이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난 이런 걸 느꼈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제, 집에 가서 오늘 날씨와 어울리는 비빔면이랑 군만두를 해 먹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거실에서 느끼는 한 여름밤의 분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