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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랑 May 03. 2016

색은 천천히 바랜다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그렇게.

보라색 천일홍 꽃다발,

지난해 9월부터 천장에 매달려있다.

그 날 꽃말을 곱씹으며 나눠가졌다.


반년이 넘게 흘렀다. 

지금도 변함없이 처음과 같은 모양이다.

왁스 플라워와 유칼립투스는 오그라들었지만

천일홍의 모양은 한결같다.


반년이 넘게 흘렀다.

천일홍은 더 이상 보라색이 아니다.

분홍색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나의 침대는 오간다 커튼을 지나 

아침의 빛이 따뜻하게 흐르는 근사한 곳에 있다.

가장 좋아하는 그 곳에 천일홍을 매달아 두었다.


매일 아침 따뜻한 빛이 걸려있는 천일홍.

변함없던 보라색과 동글한 모양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눈과 마음에 담겼다.

따뜻한 햇빛 안에서 안도감을 줬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증명이라도 받은듯 했다.


눈치채지 못 했다.

지난해 찍어둔 사진을 보고 비로소 깨달았다.

느끼지 못할 만큼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의 따뜻한 빛은

선명했던 색을 부드럽게 바꾸고 있었다.

깨닫던 순간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쉬웠나?

슬퍼졌나?

실망했나?


무엇도 영원할 순 없다는 사실을 다시 느낀다.

선명했던 보라색이 부드러운 분홍빛이 되어버리듯

지워질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던 기억도

아파서 절망하던 순간의 감정도

부드럽게 변해서 추억으로 남는다.


시간의 차이는 지만

결국에는 부드럽게 변해간다.

새삼스럽게, 당연한 사실을 느낀다.


지금도 햇빛이 드는 그 자리에는

 바랜 천일홍이 자리하고 있다.

아주 옅어져서 사그라들 때까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속도로 아주 천천히

어디에도 영향을 주지 않으며 사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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