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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눈 Oct 08. 2019

1. 먼지

    최근 몇 년 전부터 미세먼지가 화제였다. 그 전만 해도 먼지 뉴스라고는 봄철 황사나 스모그가 전부였는데 어느샌가 미세먼지가 우리 삶에 큰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넓게 퍼진 먼지층이 하늘을 가리고 코앞에 엄습하면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어린이집에 등원해야 했고 동네에서 놀 때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주말 나들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겼다. 실내에서도 안심할 수 없어 공기청정기를 마련하게 됐다.


먼지 많던 어느 날 고층 건물에서 바라봤던 풍경이다. 깊은 한숨이 절로 난다.


    먼지가 심한 날에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이 따끔거렸다. 호흡기로 들어온 미세한 알갱이들이 뇌까지 흘러들어서 신경세포 사이사이에 알알이 박히는 것만 같았다. 미세먼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고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될 것만 같았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이 지금의 잔기침이 먼 훗날에는 예상치 못한 큰 아픔으로 다가올까 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이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면 아이들을 위해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외출할 때 마스크를 씌우고, 들어와서는 잘 씻기고,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켜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게 뭘까?


    우리 부부가 사회 운동을 열심히 펼칠 만한 위인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선택한 계획은 소-심한 도피였다. 마음 같아서는 공기 좋은 다른 나라로 과감히 이민 가고 싶었지만 언어장벽, 문화장벽, 경제문제, 친지와의 이별 등 이런저런 핑계로 마음 접었다. 다시 말해 이민까지 갈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수도권을 떠나 미세먼지가 덜 불어올 것 같은 지방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그런데 뛰어 봤자 벼룩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미세 먼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라 전체가 영향권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똑같지는 않다. 지리적, 지형적 특성과 그 지역의 주력 산업에 따라 먼지에 덮이는 빈도와 밀도가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안에서 먼지가 조금이라도 덜 오고 또 연하게 오는 곳을 찾아야 했다.


    미세먼지가 섞이지 않은 맑은 공기를 좀 더 마실 수 있는 곳.

    잿빛 하늘이 아닌 파~란 하늘을 좀 더 볼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더 많이 마스크 없이 뛰놀 수 있는 곳. 


강릉에 놀러 가서 본 하늘이다. 숨이 트이고 마음도 트인다.


    우리 부부는 최종적으로 세 곳의 후보를 두고 고민했다.


1. 속초 - 태백산맥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먼지바람을 막아줄 것 같다.

2. 고흥 - 남해 바람이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먼지를 밀어내 줄 것 같다.

3. 제주 - 섬 바람이 드리웠던 먼지층도 금방 흩어버릴 것 같다. 관광과 농업이 주력산업이니 먼지의 자체 발생도 적을 것이다.


    이 세 곳 중 어디든 괜찮았다. 하나를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는 너무 쉽게 결정됐다. 그 장소와 우리 가족이 만날 운명이라서 그랬을까? 그렇겠지. 그리고 또 내 귀가 얇은 덕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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