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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Jan 15. 2019

사회생활에서 어려운 일, 내 선을 지키는 것

이 글을 네이버 블로그 욕심많은워킹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어려운 일은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내 선을 지키는 것.             





나는 빠른 년생이라 18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워낙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한터라, 늘 막내 역할은 나였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막내 생활의 처신은 상냥함과 예스걸이 필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꼭 좋은 결과만을 낳지 않는다. 타인은 너무 쉽게 나의 영역에 침범해 나의 감정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고 쉽게 대할 때마다, 상처받고 '왜 이럴까?'를 곱씹고는 했다. 







결국 타인은 웃었지만,
나는 숨겨진 가면 안에서는 
울어야 했고, 
감춰진 마음 안에서 속상함은 
나의 몫이 되었다. 







타인 앞에서 '착한 이미지'가 되고 싶어서, 나쁜 평판을 받기가 두려워 내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고, 그러면서 내 자존감도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애써 합리화해보지만, 그게 말처럼 내 가슴은 쉽게 수용이 되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나는 외근이 잦다. 친하게 지내던 해외 영업팀 여자 부장님이 해외 우편을 부탁하셨다. 때마침 외근 나갈 일이 있던 터라, 우체국에 서류 봉투만 내밀면 되겠다 싶어 흔쾌히 서류 봉투를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해외 우편은 따로 전용 용지를 영문으로 기재해야 했다. 결국 나는 해외 발송 용지를 따로 받아 일일이 영문으로 작성했고, 행여나 오타가 없는지 재차 확인해야 했다. 그러면서 해외 우편 발송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부탁임을 인지하고 다음에는 해외 발송 용지에 주소를 기재하려고 요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처음부터 기분 좋게 수락한 부탁이라 그리 불편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며칠 뒤 해외 영업팀 부장님이 또 해외 우편물을 발송 요청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당하게도 서류만 덜렁 내밀고는 "김 과장, 이거 해외 우편 좀 보내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달아오르는 나의 뺨의 온도를 느끼기도 전에 당혹감을 느꼈다. 이제 나는 앞으로 해외 전용 용지에 주소를 기재해서 달라고 다짐했는데 이번에 부장님은 봉투를 밀봉하지도 않고, 서류만 덜렁 내밀었으니.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였다. 나는 선의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요청이든 부탁이든 흔쾌히 수락한 거였다. 내 기준에는 적정한 선이라는 기준과 함께. 하지만 타인은 앞으로 이렇게 해도 되겠다는 더 큰 선을 드밀어 내 감정을 마음대로 휘젓고 있었다. 내가 베푼 호의는 상대방의 권리가 되었다.

과거라면, "아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과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서류를 스스로 봉투에 밀봉해서 영문으로 직접 주소를 기재했을거다. 그래놓고 속으로는 '이 업무는 내 업무가 아닌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탄식에 내 신세를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 업무는 내 업무가 아니야. 지금 여기서 수용하면 이제 이 일이 내 업무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여기서 멈춰야 해'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부장님,
해외 우편은 
전용 발송 용지가 따로 있더라고요.
이 용지에 주소 기재해서 주세요.







그러고 나니 뭐랄까?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잘했어. 네 일이 아닌 일로 네가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는 거잖아. 괜찮아. 지금 잠시 불편하면 되는 거야'라며 이제는 자기 합리화로 애써 나를 위로하기보다 나를 칭찬했다. 이번에는 부장님의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놓인 듯, 순간 당황스러워하시는 걸 눈치챘다. 좀 전에 내가 느낀 당혹스러움을 이번에는 부장님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용이 되는 적정선은 외근 나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서 발송하는 것뿐, 그것이 나의 한계선이었다. 하지만 부장님은 그 선을 오히려 더 건너 나의 감정을 휘젓고 있었다. 이번에는 서류를 밀봉조차 안 하고서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몇 분이 흘렀을까? 영문 주소 작성은 해당 부서의 사원이 작성했고, 우편 발송은 부장님이 외근 나갈 일이 생겼다며 내게 준 우편 서류를 다시 가져갔다. 내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만큼 상대방도 그만큼 해주면 좋으련만, 사회에서는 내 생각만큼 따뜻하지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나 자신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살려야 함이 먼저였다. 

조직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다. 내 선을 지키면서 덜 상처받고, 덜 상처 주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그 선을 지키며 오늘도, 내일도 선택의 기로에 서서 아슬 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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