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욕심많은워킹맘 Apr 15. 2019

내가 홈스쿨을 시작하는 이유, 나처럼 되지 말라고

이 글은 욕심많은워킹맘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내가 홈스쿨을 시작하는 이유,


나처럼 되지 말라고









© lonely_planet, 출처 Unsplash






저는 큰 아이가 4살 때부터 홈스쿨을 시작했습니다. 3살 때 시중 방문 한글 학습지를 이용했어요. 정해진 시간에 손님 방문과 비용적인 측면도 부담이었습니다. 수업료와 별개로 매번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교재비는 별도 구입이라 처음 때와 달리 부담스러워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퇴근 후 아이를 직접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월이 흘러 올해 4학년이 된 큰 아이는 보습학원이나 단과학원을 보내지 않고 퇴근 후 엄마표 손길로 아이 학습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늘 매번 꼼꼼하게 학습 체크는 못합니다. 사흘 혹은 나흘에 한 번씩 체크하거나, 혹은 일주일에 한번 체크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부지런하고 지구력이 강하면 좋을 텐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홈스쿨을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 아이를 영재를 만들기 위함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을 만들려는 이유도 아닙니다. 영재든 모범생이든 이건 엄마의 목표가 아니더라고요. 무엇보다 정보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데 전 이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질 않거든요. 요즘은 교육도서도, 육아서도 손 놓고 산지 오래입니다. 도서관에서 읽어볼 요량으로 대출 해오지만, 펼쳐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반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상황에도 제가 홈스쿨을 시작했던 이유 중에 저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 Free-Photos, 출처 Pixabay





전 초등학교 6년 내내 공부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먹고살기 바빠 제 학습에 신경 써주실 여력이 없으셨습니다. 그나마 전 첫째라고 힘든 시절에, 매일 아침 문 앞에 아이템풀 학습지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땐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그럴까요? 새벽에 학습지가 배송 되어오면 어느 집에서 제 학습지를 몰래 빼내서 다 풀고 심지어 채점까지 해서 도로 갖다 놓았더군요. 



동네 어느 집에서 제 학습지를 훔쳐서 몰래 풀어다 도로 가져다 놓았어요. 



그리고 당시 장원 교재가 인기였는데 이것 또 일주일에 한번 2~30분 방문 교사가 와서 지도하고 나면 나머지는 매일매일 학습할 수 있도록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한데 저희 부모님은 고작 일주일에 한번 2~30분 선생님의 손길에만 의지했던 거죠. 저는 주 중에 하루, 선생님이 오시는 날 밀린 숙제 푸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아예 포기한 날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마냥 좋았습니다. 공부 스트레스가 없으니까요. 즐거운 방학이 되면 실컷 늦잠 잘 수 있겠다는 설렘으로 기다리던 방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얼굴빛이 어둡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통지 표를 들고 가면 아빠에게 야구방망이로 맞는다더라고요. 



전 행복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공부를 안 해도, 시험 기간에 동네 친구들과 소타기 말타기 하며 실컷 놀아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하셨으니까요. 통지 표에 집에 가라는 성적이 나와도 아무 말씀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오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제 친한 짝이 돌돌이 안경을  쓰고 도서관과 독서실을 다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던 겁니다. 정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전 친구 따라 도서관과 사설 독서실을 다녔습니다. 밤늦게 공부하고 오면 저희 친정아버지가 박카스 한 병을 사들고 절 마중 나오셨어요. 밤늦은 시간 위험하다고요. 그때 친정아버지가 건네주신 박카스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난생처음 해보는 공부라, 방법을 모르겠더군요. 그때 모범생 친구가 하는 데로 깜지(?)도 열심히 하고, 교과서에 샤프로 동글뱅이 쳐놓아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중지 손가락에 굳은살이 베일 정도로요. 



그래서 늘 밑 바닥에서 놀던 제 성적이 처음으로 반에서 8등을 했습니다. 그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커닝 의혹을 받았습니다. 단박에 성적이 올랐으니, 의심 어린 눈초리를 견뎌야 했지요. 하지만 계속 10등 안으로 유지하자 커닝 의혹은 사라졌습니다. 그게 제 평소 성적이 된 거죠. 



문제는 수학, 과학, 사회가 참 힘들었습니다. 6년 내내 공부도 안 하고 놀았으니 기초가 부족한 거죠. 수학에서는 선행보다 선수 학습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기초가 부족하니, 현재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버겁더라고요. 사춘기가 되면서 '국어선생님'이라는 꿈도 생겼는데 자꾸만 힘들어지더라고요. 이해력도 부족하고 기초도 부족하고,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을 원망했어요. 초등학교 때 학습 지도를 조금이라도 해주시지.. 하는 마음요. 저에게 기대도 가져보고, 희망도 좀 가져보시지 하는 마음요.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저는 학원을 오래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다니다 말고, 다니다 말고, 형편이 좋아지면 다녔다가 안 좋으면 끊었다가, 뭘 하나 진득하게 해본 게 없어요. 그러다 우연히 형편이 좀 좋아져서 학교 앞 웅진 학원을 잠깐 다녔습니다. 학원에서 준  문제를 푸는데 학교에서 똑같은 문제가 나온 겁니다. 그게 족보더라고요. 그때는 몰랐어요. 사실 전, 학원을 더 다니고 싶었는데 엄마는 형편이 좋지 않아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공부를 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선생님의 출제 패턴도 알겠더라고요. 나중에는 전교 등수가 100등 이상 올라서 학력 진보상을 탔습니다. 그 이후로 담임 선생님은 하교 후 저에게 교사용 문제집을 계속 주셨습니다.  (저희 집 형편이 안 좋으신걸 아셨던 것 같습니다.) 



교사용 문제집은 우리가 접하는 문제집과 다르게 각 문제마다 바로 밑에 답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문제집을 볼 때면 지우개로 답지를 가리고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니까 주위 대접이 달라지더라고요. 



뭐 공부를 썩 잘하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인정해주시고, 선생님의 애정으로 교사용 문제집도 공수하게 되고요. 좋았습니다. 공부가 자존감으로도 연결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수학 문제 가르쳐줄 때 뿌듯하더라고요. 



네, 그래서 전 홈스쿨을 합니다. 게으르고 끈기가 부족하지만, 어릴 때의 저처럼 기초가 부족해서 고생하지 말라고요. 










비싼 학원비에 한두 어달 다니고 말 것 같으면 아예 그냥 제가 직접 지도하고 가르치려고요. 저처럼 사춘기이든, 언제든 본인의 꿈을 찾았을 때, 기초가 부족해서 헤매지 말라고요. 



공부 안 하던 저도 제 돈 벌어서 제 돈으로 학비 마련하느라 낮에는 직장 다니고 저녁에 학교 다니면서 장학금 타며 다녔듯, 공부는 누가 하라고 시켜서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배웠습니다. 다만, 기초가 부족해서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뿐입니다. 학원도 아이가 가고 싶어 하면, 나중에 본인이 가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한다면 그때는 생각해보려고요. 



 요즘 법인 결산에 야근이 이어지고 있어서 큰 아이 학습 체크를 못했습니다. 주말에는 임장 다녀오느라, 동생네 다녀오느라 피곤했어요. 오늘은 미라클 모닝은 일주일 만에 큰 아이 문제집을 채점하고 확인했습니다. 



큰 아이 문제집을 보아하니 4학년 1학기 2단원 각도 부분에 대한 개념을 적용하지 못하길래 아침 운동하고 온 뒤 큰 아이에게 설명해줬습니다.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얼마지?


사각형 네 각의 합은 얼마지?


그랬더니 180도, 360도, 대답은 척척합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문제에서 대입할 줄 모르더라고요. 큰 아이가 아직 학교에서 못 배웠다고 하길래 설명해줬습니다. 그랬더니 틀린 문제를 다시 다 고치더라고요. 



아이 얼굴에도 모르는 부분을 깨달았다는 생각에 표정도 밝아집니다. 



아이 학습이나 공부는 그냥 가늘고 길게 가려고요. 내 아이가 영재나, 우등생이나, 모범생이 되길 위함이 아닙니다.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저처럼 꿈이 생기고 목표가 생겼을 때 기초가 부족해서 고생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그 외에 나머지는 네 몫이라고요. 너 하기에 달려있다고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조바심도 욕심도 불안함도 많이 사그라들더라고요.


출처 : https://blog.naver.com/keeuyo/2214918442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