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부부도 올해엔 끝이 납니다!
이탈리아와 영국을 오고 간 비행만 약 60번, 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한 두 집 살림, 이 집에서 저 집에 도착하려면 걸리는 시간 대략 7시간.
내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그때에 함께해주지 못하는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과 애틋함. 이 감정의 크기를 잴 수는 없겠지만, 단연코 쉽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꽤나 기쁘게, 오히려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시기를 보냈다. 그럴 수 있던 이유가 뭘까. 토리노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그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아마도 어떤 항공사의 광고 카피였었나,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일상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왔다. 사람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다 다르다. 나는 그 새로움 속에 내가 적응해 가는 과정이 좋다. 이방인으로서의 내가 새로운 문화, 공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익숙해져 가는 그 과정이 재밌다. 그래서 짧은 여행이어도 에어비앤비로 현지인들이 사는 공간에 머물며, 그들이 장 보는 곳에 가서 쇼핑하고 집에 와서 요리하는 그 경험이 좋다.
이런 나에게 이번 장거리는 일상과 여행이 뒤섞이는 시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토리노의 새로운 집을 꾸미고, 새 동네 크로체타에 적응하는 동시에, 익숙하기만 했던 런던 집과 직장, 그리고 사람들도 더 소중해졌다. 런던에서 지낸 지도 만 6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익숙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런던의 매력이 보였다.
런던 집에서 그의 옷, 머그잔, 그릇, 책 등등 야금야금 살림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토리노 집은 우리의 살림으로 적당히 잘 찼다. 새로 장만한 미드 센츄리 빈티지 소파와 책장은 런던에서 들고 간 살림들과 제법 어울렸다. 런던 집은 새로 지은 새하얀 모던 플랏인데, 토리노 집은 1900년 초에 지은 오래된 플랏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취향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살림들이 두 공간에서 모두 제법 어울린다.
저가 항공이라 작은 캐리어도 없이 배낭을 메고 오고 가기를 수십 번, 그래도 지치지 않고 이 두 집 살림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어느 집에 가든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 몸이 안 좋거나 지독하게 외로운 때가 있다. 밥을 차려먹을 때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내 옆에 없다는 건 꽤나 쓸쓸하다. 퇴근을 해도 집이 그대로고 날 맞아주는 상대가 없으니 너무나 고요하다. 그래서 습관처럼 유튜브나 드라마를 켜고 디지털 소음을 듣는다.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지 우리 결혼도 했는데… 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마다 서로에게 전화를 건다. 다행히도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는데, 아마 서로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 큰 몫을 한 것 같다.
나도 그도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건 마찬가지니 그 어려움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상대라는 사실이 괜시리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도 장을 봐 저녁 식사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서로가 안쓰럽다. 나도 힘들지만 그도 힘들겠지 생각하니 서로를 응원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장거리는 우리가 선택해서 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우린 자주 “우리 부부 화이팅” 이라는 메시지를 서로에게 보낸다. 그렇게 힘을 내다보니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런 우리에게 지난봄 아주 귀한 선물이 찾아왔다. 런던에 모처럼 길게 온 그와 소소하지만 행복한 이스터 공휴일을 보냈고, 그 한 달 뒤 설마 하는 마음에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했다. 장난 반 진담 반 오빠에게 외로우니 너의 분신을 남겨두고 가라 했는데, 진짜 우리의 작은 생명이 내 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선물처럼 갑자기, 지난 유산의 아픔에서 충분히 회복되었다 느끼던 그즈음 봄에 축뽁이가 찾아왔다.
다행히도 그 봄 무렵에 영국 영주권을 신청하는 시기였고, 그 덕분에 이태리와 영국을 오고 가는 비행도 잠시 멈췄었다. 영주권 승인이 나고 신분증 카드를 발급받기 전까진 영국 밖을 나가면 안 되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2-3주에 한 번씩 영국으로 왔고, 부모님의 방문도 예정되어 있던 터라 너무 외롭지 않게 임신 초기를 보낼 수 있었다. 영국 병원인 NHS는 임신 12주 차가 되어야만 첫 초음파를 봐준다. 그전까진 피검사, 소변검사 같은 아주 간단한 검사만 하고 임신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이전에 유산을 경험해서일까, 임신 초기엔 시간이 유독 더디게 흘러갔다. 언제쯤 아기를 느낄 수 있을까, 초음파로 아기의 건강한 심장소리와 성장을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입덧은 거의 없어서 피곤하면 잠만 자고 그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길 바라며 하루하루 일하며 지냈던 것 같다. 아마도 일이 없었다면 더 시간이 느리게 흐르지 않았을까,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우울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드디어 임신 중기 20주 차에 접어들었을 때엔 잠도 덜 오고 컨디션도 매우 좋아졌다. NHS에서 본 2번째 초음파에선 정밀 검사도 해주고 성별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이 시기엔 태동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배도 제법 나와서 임산부 티도 나고. 우리 축뽁이는 아들! 내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니 조금은 더 실감 나는 시기였다. 기대한 만큼 태동은 살면서 느껴본 적 없던 신기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배 안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 꾸룩꾸룩 물고기가 지나가는 듯, 무언가 꿈틀꿈틀 거리는 듯 싶었다. 처음엔 내 위가 소화를 하면서 꾸르륵거리는 게 아닐까 헷갈리기도 했다. 그치만 점점 더 존재를 드러내는 축뽁이를 보며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매일 자기 전 배에 손을 올리고 아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밤들이 지났다.
오히려 임신 말기는 빠르게 지나갔다. 36주 차에 육아휴직을 쓸 때까지 회사도 나가고, 혼자 있는 언니가 걱정되어 영국에 와준 동생들과 시간도 보내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탈리아도 여전히 왔다 갔다 거리고. 이제 우리는 곧 축뽁이를 만나려고 한다. 2024년 1월 1일이 예정일이지만 임신당뇨로 유도 분만이 그전 주에 잡혔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장거리를 끝내줄 귀한 선물, 축뽁이가 곧 이 세상에 나온다. 일상을 여행하듯 보낸 2023년이 끝나가고, 이제 아기와 함께 할 2024년이 다가온다. 내년엔 우리 부부의 롱디도 끝이 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힘듦을 오롯이 공감하고 응원하는 우리 부부가 되길 바라본다.
곧 태어날 우리의 작은 아이를 기다리며 영국 세인트토마스 병원에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