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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Oct 23. 2023

빼도 박도 못하고

꽁트

   단말마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귀에 익숙한 그 소리에 하마터면 입에서 물을 뿜을 뻔하였다. 애초 작정하고 본 것은 아니었다.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면서 거의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있던 중 알고리즘을 따라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일 뿐이었다.  보수정당 후보자들의 결집과 단일화에 대해 한 기자가 후보자에게 질문하였고 그 후보자가 뭐라 대답을 하려고 하는 순간, 군중 속에서 그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어’와 ‘워’의 중간인 외마디 소리가 군중들 틈에서 튀어나왔고 후보자의 뒤쪽에 있던 한 남자가 달려와 후보자의 귀에 대고 ‘좌팝니다. 답변하지 마십시오.’ 하며 말하는 것이 여과 없이 녹화된 것이다.

물론 그와 유사한 음색을 가진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삼십여 년을 살았던 사람이다.  나는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의 sns에 들어갔다. 그는 여전히 미술 전시회와 자신이 소장한 작품과 골동품을 소개하였고 독도 지킴이 같은 구국 활동이나 장애인 구호 활동사진도 올려놓았다. 유튜브 동영상은 서울 인사동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후보자의 기자 간담회 때의 일이었고 그때 그의 일정은 비어있었다.  그 대신 후보자의 홍보물을 올려놓은 것이 있었다. 댓글이 달려 있었고 그 댓글 중 하나를 읽었다. ‘평소에 존경하는 선배이지만 이건 아니지요. 뇌가 없습니까? 이런 후보를 지지하다니요.’ 누군가가 그에게 변절을 타박하는 댓글이었고 그는 그 댓글에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다소 유약한 답글을 달아놓았다.        

  우린 아주 점잖게 합의이혼을 하였다. 이 정도 살았으면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성애는 바닥났고 신뢰는 무너졌고 미래는 암울하게 느껴졌다. 기껏 소유욕이나 경조사, 일종의 노후 간병보험과도 같은 의례적이고 보잘것없는 신념, 아니 미신과도 같은 부부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무엇보다 이혼을 해야 상간녀에 대한 위자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가정법원 주차장에서 내가 말했다.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위자료 소송할 거야. 그 여자에게 말이야’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되겠니? 그럼, 그 여자 나를 매장시킬 거야. 사회적으로. 이 바닥에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도록 말이야.’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게 유, 유 하면서 물고 빨고 한 결과라는 거야? 그건 내가 알 바 아냐. 그리고 매장 좀 되면 어때? 그렇게 사랑, 사랑, 타령했으면 그 사랑에 대한 대가는 감내해야 하는 거 아냐?’  ‘왜 이래? 다른 사람들이 듣잖아.’ 남편이 얼굴을 찌푸리며 냅다 차에 올라타고는 속력을 내며 멀어져 갔다.


     변호사는 고작 낡은 아파트 한 채가 나의 전 재산이라는 것 때문인지 일의 진행이 더뎠고 설명은 무성의했다.  ‘위자료를 최고로 올려주세요.’ 하는 나의 말에 조소가 가득한 얼굴로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대기업 재벌의 사모님조차 겨우 1억을 받았을 뿐이라며 그 정도의 위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할 수 없이 유튜브에 나오는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변호사에게 의존할 밖에 없었다. 상간녀, 상간남 위자료 청구 소송 하는 법, 증거자료 모으는 법, 소송절차, 구상권, 답변서 작성 등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이 모두 자세히 나와 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해볼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내가 준비한 증거자료는 남편의 해외여행자 보험가입증서와 리조트의 숙박내역이 전부였다. 중국을 다녀올 것이라는 남편의 말과 달리 피고와의 여행지는 베트남이었다. 보험가입증서에는 남편과 그녀의 이름이 휴대폰 번호와 주민등록번호가 나란히 나와 있었다. 호텔의 방 호수와 함께 더블 침대용이라고 씌어있는 홍보물에도 숙박 커플로 나와 있었다. 어딜 가든지 일회용 비누, 칫솔, 콘돔까지 버리는 일이 없는 남편의 고질적인 저장습관이 이때만큼 고마운 적은 없었다.  

     그녀는 맞고소로 대응하면서 남편을 증인으로 채택하였다. ‘이미 그들 부부는 파탄 중이었고 나는 이혼을 앞두고 있다고 말한 원고 남편의 말을 믿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몇 번 만났을 뿐, 성관계도 없었다.’ 소송의 피고 반대서면에는 이렇게 나와 있었다.  첫 번째 재판이 끝나고 변호사가 말했다.  ‘판사가 증인채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까 우리 쪽에선 다행이지요. 이젠 통장과 카드내역을 제출할 겁니다. 남편과 피고 간의  통장거래 같은 거 말입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식에 오실 수 있지요? 스몰웨딩이에요. 양가 부모와 친구만 초대해요. 상견례는 하는 게 맞겠어요. 여자 친구를 결혼식 때 처음 만나면 좀 그렇잖아요. 여자 친구의 부모님도 이혼하셨고, 장모님이 암 투병 중이어서 결혼식을 앞당기게 된 거예요…… 아버진 선거운동 하는가 봐요. 친구들에게 널리 알리라고 난리예요. 근데 이번에 갈아타셨던데요? 진보에서 보수로. 정말 극단적인 선택이야. 하하. 엄마는 여전히 씩씩하시겠지요? 원하신 거니까. 어쨌든 상견례 때 만나요. 참, 그전에 두 분은 한번 만나시는 게 어때요? 상견례 때 너무 어색하지 않으려면 말이에요.”  

       그럼 유튜브에서 흘러나왔던 목소리는 남편의 것이 틀림없다. 아들의 말대로 남편은 진보적 성향의 한 후보자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모임까지 결성하였었다. 그런 그가 정반대의 진영에 있는 후보자를 밀고 있다니. 아들에게 유튜브 동영상을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면 오래전부터 좀 노력을 했어야죠. 그럼 렇게 이혼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하고 빈정댈까 봐 두려웠다.  


       오랜만에 만난 남편의 얼굴은 윤기가 흘렀다.  ‘어디 한오백 년만 한번 살아볼까, 난 영원히 살 수 있는 양생술이 있으니까 말이야. 하하’ 하고 말했던 것이 새삼 떠올랐다.

       “여전하네. 화장기도 없고 웃음기도 없고. 상견례나 결혼식에 앉아있으려면 그 표정부터 바꾸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왜 이런 송사를 벌여서. 쯧쯧.”

       남편과 대화를 할 때면 자연즉 얼굴이 굳어지는 습관은 여전한지 그가 단박에 알아보았다. 나 또한 그의 표정 뒤로 상견례는 물론이고 결혼식, 그리고  송사에 대한 짜증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결혼을 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제 부모를 반면교사 삼아도 될 텐데 말이야. 그리고 난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되는 게 싫고, 죽기 전에 아들에게 뭔가를 나눠 주기도 싫고  무엇보다 이혼한 마당에 또 구질구질한문제로 신경쓰는게 싫어.’  하며 생각하고 있을 그를 앞에 두고 있자니 부아가 났다.   남편이 말했다.

       “이렇게 서로 보고 나면 상견례 때 좀 나아지려나? 우리 분위기 말이야. 저쪽도 우리와 같은 처지라던데. 이혼한 뒤 암이 발생했다든가. 그러니까 ‘유’도 조심해. 건강 말이야. ”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알게 된 것이 바로 '유(you)'였다.  평소에 그는 나에게 입술을 오므려야 발화되는 이 모음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불쑥 이렇게 부르고선 당황한 듯 얼굴을 돌렸던 것이다.   이번엔 내가 말을 꺼냈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더라. 그것도 정반대로 노선이 바뀌어서 말이야.”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말하는 거야?”

       “진보에서 수구로 바뀌었던데. 수구꼴통.”

       “페이스북 봤구나?”

       “물론. 그리고 유튜브도.”

       “뭐래? 어떻게 나왔던데?”

       “목소리를 들었지. 고함치는 소리 말이야. 후보자 옆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더구먼.”

       “소설 쓰고 있네.”

       호기로운 그의 목소리와 달리 그는 나의 눈빛을 피해 테이블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러다간 박쥐가 되고 말 거야. 날짐승에도 들짐승에도 끼이지 못하는 신세 말이야.”   

       그가 입가를 비틀며 말했다.

       “이거 왜 이래? 혼자 상견례에 나가고 싶어? 우리 한번 끝까지 품위를 지켜보자. 물론 이미 상당히 훼손되긴 했지만 말이야. 지금이라도 네가 소송을 포기하면 가능하지.”

       남편은 이혼하고 난 뒤 허세가 더 심해졌다. 나는 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와 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있던 젊은 남녀가 일순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쉿, 조용히 해. 교양 없이.”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내가 그 여자랑 한 편 먹었다는 것을 잊고 있어. 위자료도 내가 물어줄 판국에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증인으로 나가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말이야. 우리는 이미 파탄이 난 부부관계였다고, 내가 그 여자를 속였다고 증인 확인서를 써주면 돼. 그럼 넌 별다른 소득이 없어. 내가 정치권이든 법조계든 손이 닿으면 말이지, 이런 일 같은 건 누워서 떡 먹기야. 너만 피곤할 거야. 나를 상대하려면 말이지.”

       그녀가 자신을 사회적으로 매장할지도 모른다고 ,남편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의 진면목을 모르고 있는 꼴이다.          

       내가 말했다.

       “도덕적으로 방만한 사람은 이렇게 정치적으로도 기회주의자로도 변절하게 되지. 쉽게 말해서 양다리를 걸치는 인간들은 이렇게 흐르게 되어있어.  당신 말대로 될까?  나는 이혼 법정 들어가면서 가정법원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을 보았어. 당신과 그 여자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던 것 말이야. 당신은 서둘러 법정 안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단번에 그것을 알았지. 당신이 그 여자의 아파트 임대료나 관리비나 해외여행 경비를 이체한 내역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냐. 법원이라는 신성한 관공서에 어떻게 불륜인 커플의 작품이 나란히 걸릴 수 있는지, 이것을 호소하고 말 거야. ”

       순간 남편이 괴성을 질렀다. 정확하게 유튜브 동영상에서 튀어나왔던 그 소리와 일치하였다. 이번엔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겠군. 안 그래?”

       그의 자조에 또다시 웃음이 났다. 변호사가 한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란히 걸려있는 그 그림을 찍은 사진을 내놓자 변호사가 말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겠군요. 증거로 말입니다. 법적인 것보다 사회 통념상으로 말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앉아있었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동시에 이렇게 집요하게 그와 그녀에게 악의와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 나 또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함이 들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있는 꼴이지 뭐야. 나 또한 말이지.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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