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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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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Dec 18. 2019

굿바이 채팅방

의미 없는 기다림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의 채팅방을 나갔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예전에도 화가 나면 채팅방을 나갔고, 제로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건 비단 그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메신저를 사용하는 내 버릇이기도 했다. 뭐든 나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걸 싫어하는 것 같고 그래서 대화가 중단되면 그 상대가 누구라도 채팅방을 나간다. 비록 대화 백업 따위 하지 않는 성격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손해를 본 경험 역시 수두룩하지만 정기적으로 채팅방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뭔가 답답한 기분이다, 그래서 난 내 맘대로 나갈 수 없는 단체채팅방을 혐오한다. 한 번은 단체방에서 나갔다가 다른 사람이 나를 다시 초대했던 적이 있었고, 다들 내가 실수로 나갔다고 생각했다. 실수가 아니었다. 다들 단체방을 싫어하는데 왜 또 단체방에 그렇게 목을 매는 걸까. 그러고보니 나와 그가 모두 들어 있는 단체방도 있다. 그 방에서 딱히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와의 대화방보다는 그 단체방이 더 소중한 정도이다.


어쨌든 이제는 그에게 연락해야 한다, 든지 그에게서 연락이 올 것이다, 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생각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시간을 가지자고 했을 때에는, 여러 가지 일들로 물론 너무나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그렇게 한 마디는 할 줄 알았다. 그럼 나는 또 그 말을 받아주고,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그에 대해 기대하고 짐작하는 대로는 움직이지 않으며, 내가 설마 이렇게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상상하는 최악의 경우를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확률로 따라왔던 사람이다. 올해 여름 내가 그에게 생각해 보자고 했을 때 그는 왜 하필 이렇게 정신 없을 때 그런 얘기를 해, 라고 말했다. 회사가 바쁘기 때문이었다.


그때 다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되었다. 나의 관성과 게으름 때문에,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쩌면 이미 그때 모든 것이 다 부서지고 없었을 텐데, 나는 생각해 보자는 말을 하고, 그에게 분노하고, 울고, 그에게 받았던 선물들을 시위하듯 포장하여 돌려주고, 그러면서 또 그가 혹시 사과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결국 흐지부지하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리고 내 생일이 있었다. 올해의 생일선물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생일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생일도 기념일도 다 귀찮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좋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에게 펜션을 빌려 생일 파티를 해 준다. 나는 매년 그의 생일 선물을 샀는데, 난 그저 어린이날이든 크리스마스이든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빨간 날들을 누리는 걸 좋아했고 생일도 고정불변의 휴일처럼 생각했으며 또 남에게 줄 선물을 사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을 뿐이다. 올해 생일 선물은 완전히 실패하여, 처음부터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 이북 리더기는 어디서 먼지를 맞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 고른 것이니 섭섭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생일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나중에 다시 돌려받을 물건의 개수를 늘어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나의 가장 나쁜 상상들은 언제나 잘 맞아떨어졌듯, 그때에도 나는 그에게 한밤중에, 새벽 한 시가 넘어 전화했던 여자,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던 사람이 아무 사람도 아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는 카톡으로 회사 후배, 라고 퉁치고 넘어갔다. 사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전화가 오기 며칠 전 그의 핸드폰 상단에 알림 메시지가 떴을 때, 소개팅 앱에서 “오늘의 소개팅 추천을 받으세요”, “ㅇㅇ님으로부터 호감이 도착했어요”라고 친절하게 알림을 주는 것을 보았을 때가 오히려 더 어이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ㅡ 차에서 같이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음악 앱을 가리고 나타난 알림창은 그저 어처구니가 없게 만들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정말로 그냥 “어이가 없는” 느낌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그때는 바로 물어봤을 정도였다. 근데 소개팅 앱은 왜 깔았어? 멍청한 질문이었다. 스타트업 시장 조사 때문에. 더 멍청한 대답이었다. 고작 생각할 수 있는 대답이 그거였다면, 회사 후배라고밖에 또 대답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그는 참 상상력이 빈곤했다.


진짜일 수도 있었다. 진짜 회사 후배이고 진짜 그냥 호기심에 깔아보았을 수도 있었다. 상관없었다. 내가 그에게 시간을 가지자고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고, 그건 일종의 도화선이었다. 나는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고,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내 직장이 바뀌면서 퇴근 시간에 많은 차이가 생겼는데 저녁에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내 집에서 그의 집까지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갔고, 또 그만큼 나는 이른 출근을 했다. 한밤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가서 삼십 분 정도 기다리면 그가 식당으로 왔다. 나오기 직전에 바쁜 일이 생겨서, 라고 하면 나는 요새 일이 바빠서 어떡해, 라고 말했다. 배고픔과 짜증을 제대로 표현한 적은 없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나는 둘 사이 분위기가 어색해지는게 싫어서 그런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우리는 또 길고 긴, 그가 일방적으로 회사 얘기를 하다가 내 얘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러면서 혼자 침울의 단계로 접어드는 식사를 해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어도 그날 저녁에는 혼자서 갑갑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천장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평화주의자가 되었던 것일까. 메시지도 하지 않고 전화도 물론 잘 하지 않는, 왜 카톡을 씹는 거야, 라고 내가 반은 장난으로 반은 또 억울함으로 말하면 누군가 대화를 정지하는 사람은 있어야지, 라고 말하는 쿨한 사람에게 사실은 당신보다 내가 더 쿨해, 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일까?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지금 나는 예전처럼 핸드폰과 멀리 멀리 살고 있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다. 고등학생 때, 중학생 때, 대학생 때를 막론하고 핸드폰은 내게 중요한 물건이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뒤늦은 화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제대로 싸우는 사람이 더 갈등 해결에 능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마 갈등 해결 능력이 전무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좀 더 사랑받고 싶다는 말은 그냥 넘어갔고, 그리고 늦은 가을에, 저녁 먹을래? 라고 메시지를 보내온 그가 오늘은 피곤해서 못 가겠어, 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그가 헤어지자고 했다.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없었다고 했다. 헤어져서 씩씩하게 혼자서, 여태까지 그래왔듯 멋대로 잘 지내라고 했다. 나는 울면서 그에게 찾아갔고 그는 화를 내면서 이런 거 정말 별로야,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라고 날 돌려보냈다. 그리고 두 번 정도 주말에 만났다. 아무렇지 않은 주말 동안 우리는 드라마 한 시즌을 다 보았고 속초에도 다녀왔다. 하지만 속초에 다녀와서, 바다 보러 가 주어서 고맙다는 내 메시지에, 그는 또 답을 하지 않다가, 우리 시간을 좀 가지자고 했다.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기는 너무 어렵다고 했다.


시간을 가지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만약 그때 여름에 모든 것이 이미 다 깨어졌다면. 헤어지자고 말할 때에는 필요할 때 내가 없었다고, 하지만 시간을 가지자고 말할 때에는 내가 너무나 가족 같아서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과연 그의 기준을 맞출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 그야말로 내가 그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존재일까? 나는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울만큼 울고, 앞으로도 또 많이 울겠지만, 야비할 만큼 매정했던 말들을 들을 만큼 듣고, 헤어지자는 결심도 엄청나게 많이 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내가 어느날 그가 지금까지 생각해 봤는데 다시 만나자, 라는 메시지를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제는 안다. 아니, 원래 알고 있었다. 그가 내 안에 어떤 것을, 그가 의도치 않았겠지만, 망가뜨렸다는 것을. 무시하고 간과했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한밤중에 그의 침대에서도 혼자 울었던 일이 참 많다는 것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심지어 짐작한다 해도 난 여자가 울면 짜증나, 라고 말했던 그때처럼 왜 또 우는 거야, 라고 짜증스럽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채팅방을 나갔다.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근데 솔직히 나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적어도 얼굴을 보고 내 말과 내 소리로 전달하고 싶다. 안 그러면 모든 것이 너무나 불공평하게 끝난다는 생각이 들고, 그에게 어떻게든 상처를 주고 싶다. 야비하게, 잔인하게. 하지만 그는 나에게 상처를 입을 정도로 나에 대한 느낌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 화가 나서 이렇게 또 긴 글을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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