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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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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Dec 20. 2019

심각한 모순

혹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처음에 사귀자고 했던 사람이 나중엔 네가 날 꼬셨잖아, 라고 말하는 것도, 결혼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 결혼하라는 말을 부지런하게 하시는 부모님 앞에 여자친구라며 사람을 갖다놓는 것도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어느 한 구석에 언제나 양가성을 품고 있는 존재이므로,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단지


어떻게, 정말로 어떠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넌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내 곁에 없었으니 앞으로도 혼자 잘 살아, 라고 말하면서 헤어지자고 했던 사람이, 난 결혼할 생각도 없고 결혼은 다 포기하고 사는데 우리 관계가 너무 가족 같아서 이런 마음으로는 난 계속 만날 수 없어, 라고 말하면서 시간을 가지자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요할 때마다 곁에 없는, 그렇지만 너무나 가족 같아 자기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고 이미 결혼한 상대방처럼 구는 걸로 느껴지는,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질 수 없는, 그런데 필요할 때는 또 곁에 없는, 그런 존재였다는 말인가, 내가. 밤마다 지하철을 타고 세 정거장을 달려간 뒤 육교를 건너갔던 내가, 또 어느날 밤에는 화가 나서 똑같이 육교를 건너 다시 집으로 마지막 전철을 타고 돌아왔던 내가.


그러나 나는 그가 감히 그 정도로 복합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니 그냥 모든 것은 그때 그의 머릿속을 지나간 단어였을 뿐이고, 그의 마음 속에는 지겨움이라는 단어 하나만이 제대로 박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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