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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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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Dec 26. 2019

외국의 크리스마스

베트남 달랏에서


올해는 베트남 달랏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나트랑에서 이브를 보낸 후 달랏에서 덥고 또 시원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아직 연말까지 날이 많이 남아 있으니 언제나 상상만 해 오던 남국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셈이다. 스페인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도 있었다. 강원도에서 보냈던 크리스마스도 있었다. 그때 생각을 잠깐 했다가, 크리스마스 인사 겸 카톡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연휴 잘 보냈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언제나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태도의 대답이 돌아왔다 ㅡ 안녕? 이라고 물으면서 안녕 못해, 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사람이 없고 How are you? 라고 물을 때 So so라는 대답을 들으면 당황하는 게 당연지사이듯, 실제로 연휴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 양태에 대해 듣고 싶은 사람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는 어 안녕, 크리스마스는 무슨, 그냥 노는 수요일이지, 라고 시큰둥한 대답을 했다.


알게 뭐람. 어떻게 대답해도 상관 없었다. 그래도 힘들게 카톡한 건데 그럴 땐 그냥 잘 지냈다, 라고 대답하면 되는 거야, 라고 내가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이국에서 평화롭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달랏 시내에서 아리아나 그란데, 존 레전드, 시아의 노래를 듣고 있지 않은가? 괜찮았다, 뭐라고 대답해도. 어차피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간 크리스마스들이 있었고, 다시 생각할 필요들은 없는 것이었다.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그에 대해서, 비록 여전히 분노로 똘똘 뭉쳐 있고 그가 나로 인해서 상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공정심 내지 집착으로 ㅡ 나에게 그토록 한 마디 한 마디로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기묘하고 비뚤어진 사명감과 공평함에 대한 집념으로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지만, 어떻게든 그에게 상처를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다시 만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고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한 이별이 무관심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그렇게 생갇하지는 않는다. 무관심은 그만큼 그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의 나와 같은 분노와 억울함, 일종의 폐허가 있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었고, 더 이상 현명하지 않고 어리석고 순진하게 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봄날의 토끼였다. 머리를 전혀 쓰지 않았던 천치였다. 나는 그가 후회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어떻게든 주었던 상처들, 함부로 뱉었던 말들이 옳지 못한 것이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최소한 공통의 친구가 있고 공통의 세월을 공유한 사람들 간에 지켜야 했던 예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별 수 없지, 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이미 이번 크리스마스 이전부터 다른 여자와 만나오면서 이미 모든 건 내 알바 아니야, 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나에게 어떠한 영향이 있단 말인가? 아무 영향도 없다. 나는 그에게 1월 중에는 만나면 좋겠다, 라고 했고 그는 그럽시다, 라고 했다. 나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1월 30일에 만나는 상황은 원하지 않고 있으므로 어지간하면 1월 둘째주 전에 만나자고 했고 그는 둘째주는 왜? 리고 물었다. 별 뜻 없는데, 설날도 있고 늦어지는 게 싫어서, 라고 답했고 답장은 없었다. 알게 뭐람, 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크리스마스는 저물었다. 나는 연말을 따뜻한 나라에서 온전히 보내고 갈 것이다. sick of it, 의 단계에 너무 오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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