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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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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an 06. 2020

다시 만난다면

공평에 대한 집착


너는 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여기에 온 거야, 라고 당신이 물었던 날처럼 나는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고 그런 말을 한 건지 묻고 싶어. 가족 같은 관계라서 더 이상 이런 마음으로는 만날 수 없다, 나에게 시간을 달라, 라고 말하던 뜻에 설마 다른 깊은 뜻이 있었는지 묻고 싶어. 네멋대로 굴면서 인생 편하게 살아, 너는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 없었으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작 내가 필요할 때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곁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심지어 함께 식사를 하던 순간에도 긴 긴 길고 긴 침묵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넌 너무 익숙해, 시간을 갖자, 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당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원했니.


언제나처럼 당신의 말 곳곳에 숨겨진 싸늘한 표현, 비웃음, 자존감과 자만심으로 뭉친 말에서 나는 아, 이 사람이 나에게 질릴 대로 질렸으니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하겠다, 라고 그날로 미련없이 쿨하게 그럼 안녕, 이라고 대답해야 했니, 아니면 또 아, 이 사람이 나에게 질리고 세파에 피곤하여 정말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가 본데 막말을 해도 몇 달 동안 시간을 주어보자, 그 동안 나는 외롭고 쓸쓸하고 견딜 수 없이 화가 나더라도 기다리자, 라고 또 그렇게 묵묵부답으로 기다려야 했니. 질렸으니 헤어지자, 라는 말을 먼저 할 용기가 없어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에게 내가 또 혹시나, 몇 주가 지나면 다른 말을 할까, 미안하다고 하지는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당신이 “네가 이런 식으로 굴면 내가 더 멀어지는 거 몰라?”라고 말하면서 당신 인생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도와줘야 했니. 그렇게 소중한 당신의 인생, 모든 것이 귀하고 열정적인 당신의 인생만큼이나 내 인생은 귀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당신을 위해서, 내가 이 인생을 위해서 어떻게 싸우고 살아남아 이 여분의 시간을 누리는지 전혀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을 위해서.


그리고 당신은 지난 두 달 반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몇 달 안 만나니 별 차이도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헤어져 잘 되었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또 이이는 눈치도 없이 왜 새해에 시간을 내어 만나자고 하는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어리석고 눈치가 없었다. 그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을까 봐 또 화가 난다. 그저 내 물건이 그 집에 있는 것이 진절머리나게 싫어서, 더 이상 그의 고양이도 그의 술병도 그의 라디오도 전부 다 보고 싶지 않고 오직 나의 보잘것없는 물건들, 자전거와 향수병을 가져오려고 안달복달했던 것은 결국 나의 쓸데없는 결벽증이었다. 세상에는 깨끗한 이별도 깨끗한 떠남도 없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줄 알았지만 나쁜 사람도 있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입혔듯이 나도 그렇게 상처를 입는다. 그는 나에게 오랫동안, 아주 오래오래 지속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상처를 입혔고 나는 그것이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착각했다.


당신은 내가 주는 애정을 받을 그릇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고 마찬가지로 나의 착오였다. 당신의 그 그릇에 맞는 애정에 만족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당신이 반대로 당신보다 작은 그릇을 만나 안달복달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또 아마 당신의 미래가 이렇게 되길 바라, 라고 이별하는 것이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이별이 좋은 이별이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그가 나에게 여태껏 했던 잘못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를 바라고 그에 대한 대가로 내가 그에게 공평하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를 너무나, 너무나 바라지만 ㅡ 공평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내가 또 상처를 입는다면 그게 더 어리석은 일이다. 여태껏 단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지금 갑자기 공평해질 수 있겠는가. 화나는 일이다. 언제나 당신은 천박한 장사치였고 나는 우둔한 장님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당신에 대해 여전히 너무나 화가 나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시간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을 만나려면 이렇게 말하려고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런 만남 자체에 대해서도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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