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자와 평범하지 않은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이고 번역되면서 이렇게 직설적인 제목이 붙어버렸지만, 내가 처음 읽은 판본이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였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이 제목이 편하다. 그리고 Norweigian wood라고 하면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뜻도 되어버린다)>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생 때였고 그때는 이 책이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라니 문학계가 정말 참담하게 걱정된다! 라고 분개했다. 너무 야했고(정말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변죽만 두드리다가 끝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책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잘 나진 않지만, 그때도 <코스모스>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것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기억난다. 아무튼 그 시절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그러니까 스무 살 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와타나베'와 '나오코'와 '미도리'와 내 나이가 똑같아지는 시점에, 와타나베나 나오코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으며 그 생각까지도 완전히 똑같다, 고 여기게 되는 시점이 왔다. 나오코처럼 나도 숲속의 병동에 가 있고 싶었고, 와타나베와 같이 "죽음과 삶이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다(다시 읽으니 참 젊고 어리고 단순하고 옹색한 문장이긴 하다)"고 내 뼈로 직접 느끼고 있었다. 분신처럼 함께 성장해오던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었고, 열 네 살에 처음으로 내 안에 별개의 요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나를 완전히 장악했던 나쁜 소질들이 계속해서 날뛰었다. 나의 친구는 기즈키처럼 말재간이 좋았고, 여러 사람을 주재할 줄 알았지만, 마지막에 미스테리한 웃음을 남기고 아무 예고 없이 "죽었다". 아직도 나는 인용 부호가 없으면 이 단어를 쓰지 못하는데, 왜냐면 나는 그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코와 미도리, 와타나베가 여차저차 끙차영차 하는 사이에, 그 책은 점차 나와의 유대성을 잃게 되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에는 <1Q84>에 대해 가장 강한 연대성을 느끼는 상태이다. 물론 지금도 <상실의 시대>를 종종 읽지만, 나오코와 기즈키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나를 잡아당겼던 다른 인물(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처음 읽을 때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등장인물이었고 점차 나보다 나이가 어려지더니 이제는 머리가 꽉 차 제 잘난 줄밖에 모르는 철없는 청년 정도가 되어버린 '나가사와'와, 그의 여자친구인 '하쓰미'다. 그래서 이 책을 이미지로 그리자면 하쓰미가 나가사와의 외무부 입성 축하 파티(외교관이라니, 이것도 다시 읽으니 참 젊고 어리고 단순하고 옹색하다)에 입었던 미드나이트 블루 색깔의 원피스가 떠오른다. 펌프스, 단순한 금귀고리, 깔끔한 화장, 도쿄의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 그녀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던 음식 같은 것들.
언제나 내가 '나가사와'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비뚤어진 집과 같은 비뚤어진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 말이다. 그는 노력의 가치를 대체적으로 우습게 생각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고집이 아주 세며, 자기의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자기의 "시스템"을 바꾸려 드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 괴상한 아집과 집념, 그리고 노력을 다소간 하찮게 여기는 나쁜 습성, 그러나 또 나름대로는 공명정대한 면과 섬세한 면도 있는 부분 - 와타나베는 그가 자기 자신만의 지옥에 살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갖고 있는 것, 외국에 나가 살 생각을 하면서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것은 과연 어린 시절의 나와 닮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나가사와가 갖고 잇는 부분을 분명 갖고 있기는 해도, 그것은 나가사와의 본질과는 떨어져 있는 부분이다. 고집이 세고 자기만의 괴상한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나가사와를 나가사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가사와가 이 책에 등장하는 이유는 하쓰미가 이 책에 등장하기 위해서이고, 하쓰미와 충돌하기 위해서이다. 세계의 구성이 대부분 그렇게 이루어져 있듯이 하나가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다른 하나가 있기 마련이다. 나가사와와 하쓰미는 서로의 가치관이 그렇게 다른데도 "기적처럼" 긴 시간을 만나고 버텼다. 와타나베는 나가사와 같은 사람을 만나보아도 하쓰미에게 도움될 것이 없으니 더 이상 나가사와에게 미련을 갖지 말고, 평범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 제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하쓰미는 그 충고가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듣지 않는다. 어리석지만, 하쓰미는 나가사와를 좋아하기 때문에,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줬어,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야?"라고 나가사와에게 따져 물으면서도, "세상에 나가 세파에 부딪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녀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여자이므로, 미드나이트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아주아주 평범한 아가씨이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자기 때문에 보다 이타적이고도 보편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가사와는, 설사 그렇게 변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럴 기회를 놓친다. 잃어버린다. 하쓰미와 매정하게 이별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에 결혼은 없어, 넌 그걸 알고 나와 만났잖아? 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너무나 철부지스럽다. 그는 오직 "신사일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하는데, 쿨한 척 하는게 안쓰럽기도 하다. 물론 그 스스로는 그것이 쿨한 척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결혼은 자기 인생에 없는 거라고,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노동하는 데 만족하는 평범한 필부필부와 다르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아주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결혼은 자기 인생에 없으며,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 권태를 느껴 그 짜증을 상대방에게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잔인하고 유아적인 정직함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다. 내가 틀렸다. 나는 나가사와가 아니라, 하찮고 평범하지만 그만큼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하쓰미였다. 파란색을 좋아하고 하늘색을 좋아하고 군청색을 좋아하며 B계열의 색깔은 모두 좋아하는, 미드나이트 블루와 피전 블루의 옷장을 갖고 있는 나는 비록 금색 귀고리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하쓰미일 것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보편적인 행복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사와는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