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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싫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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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Jan 14. 2020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모해?”로 시작된 짧은 대화



저번 주말까지는 화가 계속 나 있었다. 그러니까 하루종일 아무 생각도 없이 나의 시간을 잘 보내다가, 칭얼거리는 고양이를 달래다가, 저녁이 되면 뜬금없이 억울한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그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그렇게 매정한 말을 해서 미안해, 너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고 쓰레기처럼 굴어서 미안해, “그런 것까지 내가 다 말해야 해?”나 “이렇게 하면 내가 더 멀어지는 거 몰라?”라고 쿨한 척 하면서 말해서, “내가 필요할 때 넌 없었어”라는 말과 “너무 가족 같아서 이런 기분으로는 못 만나겠어”라는 말로 혼돈을 자아내어서 미안해 ㅡ 물론 그는 이런 식으로는 절대 말하지 못한다, 왜냐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과 태도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예절 교육을 받은 유치원생이라도 알 수 있다. 영화 <아담>에도 나온다. 소년이 잘못했어요,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내어 말할 필요는 없었어요, 임금님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할 수도 있었잖아요? 왜냐면 이미 임금님도 벌거벗었음을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태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하루 빨리 왕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번 주말은, 내가 크리스마스에 기껏 망설이다 카카오톡을 보내어 전달한 말 ㅡ 크리스마스여서 어떤 특별한 암시를 줄까 봐 걱정했지만 결국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보내고 말았다, 왜냐면 그때까지만 해도 그 집에 놓여 있는 나의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너무나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1월 둘째주 정도에 한 번 만나자는 말을 해 놓았는데, 당연하게도 그에게는 아무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름의 고민은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만사 귀찮고 막상 만나기에도 곤란하니 그냥저냥 무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간을 가지자는 말은 결국 그냥 텅 빈 풍선과 같은 소리였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리고 나의 화는 기이하게 변형되었다.



그 화가 어딘가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그에게 상처를 받았던 일들을 내 안에 폭탄처럼 쌓아놓고 있지만, 가망이 없는 일에 기대한다는 것도 어리석게 느껴지는 중이다. 그가 사과할 가능성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는데 왜, 내가, 그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대하면서, 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하고 분통을 터뜨리며 내 자신을 좀먹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많이 혼자서 울고 화를 내어왔는지 조금도 모르는데, 나는 소행성이 왜 떨어져서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는가 기다리고 화를 내는 종말론자처럼 굴고 있지 않는가? 소행성이 지구에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소행성이 진짜 떨어질 일은 사실 없지 않은가? 그러저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이제 자전거도 귀찮고 화장품도 귀찮은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중에서 그에게 돌려줄 만한 게 뭐가 있겠는가, 반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돌려받고 싶은 게 있는가, 애플워치? 손목시계?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래봤자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굳이 깔끔한 종결을 위해 노력하는 게 어리석은 짓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가 저번 주말, 일요일이 끝나기 직전에 문자를 했다. 모해? 그것이, 그가 1월 2째주를 나름대로 유념하여 한 문자라고 해도, 요즘 무슨 영화를 봤는지에 대해 별 의미 없는 메시지가 이어졌고 그 다음날에 내가 그에게 퇴근했는지 물어보는 문자를 보내게 되었고 오늘엔 내가 그에게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ㅡ 생일 같은 걸 하찮게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나의 지난 생일에는 아무 선물도 받지 못해 내가 옹졸하게 가슴에 상처를 또 입었다고 할지라도, 변한 건 없다. 아는 사람들끼리 연락을 어쩌다 주고 받는 상황보다도 더 어색하고 불편하다. 내가 다시 이렇게 또 연락을 하다가 만나야 하나, 만나지 않고 덮어야 하나, 라고 이틀 밤에 걸쳐 생각하게 했을 뿐 그가 나에게 한 말 중에 지워진 것은 없다. 나는 그에게서 아주 짙은 지겨움을 오랫동안 느껴 왔고, 그것은 모해? 고작 그 정도로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기대하는 결말이 달라졌을 뿐.


그는 또 답장이 없으므로 나는 다시 카톡창을 나갔다. 카톡이라는 존재가 빚어낸 문제가 참 많았다. 다 캡쳐해 둘 걸, 이렇게 글을 쓸 줄 일았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연, 내가 그에게 지금까지와의 대접을 받을 정도로 상처를 준 적이 있었던가? 새삼 돌이켜 보지만, 그의 권태는 자기 스스로의 게으름이 빚은 것이지 나에게 잘못은 없었다는 결론이 가장 타당한 것 같다. 덕분에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그에게 상처받을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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