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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 Feb 09. 2020

가끔씩 드는 못된 생각

나의 고양이, 널 정말 사랑하는데


난 고양이 엄마다. 두 살 된 고양이의 엄마고 언니이며 동생이고 모든 가족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이다. 고양이는 정말 예쁘게 생겼다. 어쩌다가 나에게 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예쁘게 생겼다. 처음에는 세 달 정도 내가 돌보아 주기로 하였는데, 그 이후 완전히 나의 식구가 되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또 다행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여전히 딸기, 아주 오래 전 나와 함께 있던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고, 한강에서 내 다리를 맴맴 맴돌다 이제는 어엿한 어른 고양이가 된 깜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빙이는 한없이 천진난만하여 큰 미안한 마음은 없지만, 지금 온전히 나만의 책임 아래에 있는 이 아이를 보면 죄책감이 밀려들면서 한 없이 한없이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탱이의 눈은 동그랗고,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집을 대체로 어둡게 해놓기 때문에, 검은 눈동자를 볼 때가 더 많아서일 것이다. 털은 내가 키우거나 내가 만났던 그 어떤 고양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빠진다. 장모의 페르시안이라 침대도 베개도 모두 고양이털로 범벅이 된지 오래인데 나는 애초에 별로 그런 데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고 또 옷장엔 흰옷이나 하늘색 옷이 대부분이라 털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비염이 심해진 것 같지도 않고 딱히 집이 더러워진 것 같지도 않다. 집에 로봇청소기가 생겼고 캣타워와 캣터널도 몇 개 놓여 있다. 탱이는 다리가 짧아서 캣타워에 잘 올라가지 못한다. 대신 내가 앉는 벤치와 책상에 올라와 앉아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높은 곳은 무서워하고 애초에 올라가질 못해서 깜이나 빙이처럼 싱크대에 올라갈 일은 없다. 덕분에 싱크대에 내 물건을 자유롭게 놔둘 수 있다. 탱이는 이른바 고양이들이 잘 저지르는 사고를 친 적이 없다. 전선을 깨물지도 않고 아무 곳에나 스크래치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너무 착하고 순하고 또 너무 착하고 순하다. 조금 어리버리한 면이 있지만, 그래서 매일 내가 짓궂은 장난을 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리본과 끈을 좋아하고 내시경 수술도 한 번 한 이력이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탱이는 아주 예쁘고, 아주 순하고, 아주 착하고, 또 아주, 뭐랄까, 아기 같다. 울보이다. 많이 우는 편이라, 소리 없는 빙이와는 ㅡ빙이가 울 때는 방구벌레가 눈앞에서 움직일 때 정도인데, 정말 희한한 소리를 낸다 ㅡ 완전 다르고, 깜이와는 조금 비슷하다. 아침에 간식 줄 시간이 되었는데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베개를 자근자근 밟는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어도 울고, 내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도 울고, 요즘은 어쩐지 더 많이 울어서 더 어린 고양이가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놀아달라고 우는 것인지 심통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정말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종알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나는 탱이를 정말 사랑한다.


고양이 때문에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고, 고양이의 수명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내 옆에서 잠을 자는 고양이를 내버리고는 절대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 한동안 장거리 해외 여행은 갈 수 없었고, 올해 유학을 가는 것도 포기했다. 탱이는 핑계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진짜 족쇄가 되었다. 여느 가족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탱이를 보며 가끔 못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너 때문에 귀찮아, 예전처럼 어디로 훌쩍 여행을 갈 수도 없고 술 마시며 놀다가 외박을 하고 들어오는 것도 불편해, 매일 화장실을 치워주고 간식을 주는 것도 가끔은 너무 귀찮아, 네가 종알거리는 걸 해결해 줄 수 없어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어. 그런데 내가 없어지면 넌 정말 어떻게 될까, 이렇게 못된 생각을 하다가, 이 세상의 전부가 나이고 또 이 세상에서 나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이 작은 생명체를 어떻게 할까 싶어서 그저 안쓰럽고 사랑스럽고 답답하게 여기다 끝난다.



물론 엄마는, 고양이가 그렇게 나를 대단하게 생각할 리 없다, 내가 너무 조마조마하게 여기는 것이다, 고양이도 어린 아이처럼 자기만의 일과가 있고 생활이 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너무 걱정이 되고, 그래서 오히려 탱이에게 한번씩 화가 나는가 보다. 내일은 탱이 귀를 닦아주고 목욕을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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