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용선 Jun 05. 2021

제1원리: 자립(개요)

인간은 생각, 느낌 따위를 표현할 때 음성이나 문자를 사용하여 말을 합니다. 문자를 사용한 말은 글이라고 하죠. 우리는 입으로 말할 때 마디마디 띄어서 발음해요. 글을 쓸 때는 마디마디 띄어서 쓰고요. ‘철수가 그림책을 본다’에서 ‘철수가’, ‘그림책을’, ‘본다’처럼 문장 속에서 자립의 최소단위를 마디로 삼아 끊어 읽어요. 이러한 마디를 어절(語節)이라고 합니다. 더 쪼개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가’, ‘을’, ‘다’ 따위가 생겨나요. 글을 쓰다 띄어야 할지 붙여야 할지 헷갈리면 일단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띄어 읽어서 의미 전달에 이상이 없으면 99.9% 띄어서 쓰면 돼요.      


띄어서 읽기 띄어서 쓰기   


띄어 읽기에 따라 말의 역할이 달라지는 모습을 살펴봅시다. 띄어 쓴 곳은 문장부호를 참조해서 띄어 읽어 보세요.


1. 엄마가 방에 들어간다. (Mommy가 Room에)

2. 엄마...가 방에 들어간다. (Mommy라는 말의 끝을 잠시 끌다가 계속 말하는 상황)

3. 엄마 가방에 들어간다. 

 a. 생략된 주어인 무언가가 Mommy의 Bag에

 b. 엄마 가방에 들어간다. 엄마가 가방 속으로

 c. 엄마 가방에 들어간다. (다른 식구들 몸은 몰라도) 엄마 몸은 가방에 들어간다.

4. 엄마, 가방에 들어간다. (엄마를 부른 뒤에 무언가가 가방에 들어가는 상황을 엄마에게 알리는 경우)

5. 엄마 가. 방에 들어간다. (엄마에게 그만 가라 말한 뒤 나 또는 다른 누군가가 방에 들어가는 상황)   

 

글쓰기 선생님들이 자주 예를 드는 구문은 ‘무지개같은친구’죠.   

  

① 무지개v같은v친구 - 무지개의 특성을 빗대서

② 무지v개같은v친구 - 성질이 아주 나쁜 친구

③ 무지v개v같은v친구 - 개의 특성을 닮은 친구     


2015년까지만 해도 ‘개같은’도 품사 용법을 따라 ‘개 같은’처럼 띄어 써야 했어요. 문법학자들이 점잖지 못한 ‘개같다’를 한 낱말로 인정하기 싫었나 봐요.     


한글맞춤법 총칙 1항은 간단히 짚고 넘어갈게요.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어딘지 좀 이상하죠? 첫째, 표준어 아닌 말은 띄어쓰기를 어겨도 된다는 말처럼 들려서 저는 저 조항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오뚱한답니다. 맞춤법 중 하나인 띄어쓰기에서는 표준어가 아닌 낱말도 표준어와 마찬가지의 법칙을 적용해요. 둘째,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유치원도 못 나왔냐는 소리를 들어요. 뒷부분의 ‘어법에 맞도록’과 ‘원칙으로’라는 말이 앞부분의 이상한 점에 면죄부를 주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저 조항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말을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하고, 표준어에 적용한 원칙은 그대로 비표준어에도 적용한다.”     


맞춤법 총칙 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이 규칙을 지키려면 일단 단어 즉 낱말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네요.

우리말에서 단어 즉 낱말은 세 가지가 있어요.

① 완벽히 자립하는 말

② 불완전하게 자립하는 말

③ 조사(토씨)

이 셋에 해당하지 않는 말은 낱말이 아니라 낱말의 성분입니다. 


①은 뜻과 형태와 기능을 다 갖춘 낱말들입니다.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수사 등. 

②는 뜻과 형태를 갖추었지만 다른 낱말을 돕는 기능이 너무 강해 독립성이 약한 낱말들이에요. 의존명사, 보조동사, 보조형용사 등. 

③은 조사(토씨)라는 건데, ‘자립한 뜻은 없이 뒤에 붙어 기능만 하는’ 말 가운데 유일하게 낱말로 대접받아요. 형태와 기능만 있을 뿐 독립해 쓸 수 있는 고유한 뜻이 없어요. 앞말과 떨어뜨려 놓으면 문장이 이상해지거나 모양만 같고 뜻은 다른 말로 오해를 받죠.  

조사를 낱말이 아니라고 보는 학자도 제법 있어요. 조사 말고도 ‘고유한 뜻은 없고 기능만 있는 말’로 어미와 접사란 것이 있는데, 조사도 이것들과 함께 묶어서 낱말의 성분 또는 현상으로 취급하면 띄어쓰기 설명이 아주 쉬워져요. 낱말은 띄어 쓰고 낱말 아닌 말은 붙여 씀을 원칙으로 하면 되니까요. 

                              

아무튼 자립하니까 띄어 쓰는 낱말들과 자립하지 못하니까 띄어 쓰면 안 되는 말들을 구분하는 일이 한글맞춤법 중 띄어쓰기의 첫걸음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맞힘법이 아니라 맞춤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