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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다정 Mar 03. 2023

낙오자의 신세한탄 글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한 곳에서의 서류탈락 이메일은 아무리 봐도 괜찮지가 않다. 헤드헌터를 통해서 서류탈락소식을 확인했고 탈락 이유를 물어봤다. 답변은 역시나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게도 얼마 안있어서 바로 해당 회사 담당자로부터 서탈 메일을 받았다.

그동안 수많은 탈락 통보 이메일을 받아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멘탈이 단련되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조금 많이 지친다.

사회로부터 부정당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초년생일때는 취업 준비 경험도 없이 대기업에 쉽게 취업이 되었기 때문에 사실 몰랐다. 이 현실이 이렇게 매정하다는 것을. 취업이 안 돼서 자살을 시도한다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정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오히려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진심으로 이해가 간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벌써 일을 그만두고 쉰 지 7개월째다. 퇴직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고 잠깐 쉰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곳에 취업이 될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AI/빅데이터 분야는 유망한 산업이고 쉬면서 해당 분야의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졸업했다. 전 회사를 1년도 못 채우고 퇴사했고, 수도권에 비해 충청권은 터무니없이 일자리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해당 직무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내가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력도 있고 학위도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너무 작은 중소기업은 지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안이 오더라도 피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나이가 너무 많은 여자라서 그런가.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회사에는 들어갈 수 없는 건가. 딱히 기술도 없어서 회사에 취업하는 거 말고는 다른 길은 더욱 어려운데. 이대로 집에 눌러앉아 전업주부로 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절대 싫다. 그렇다고 이름도 모르는 중소기업에 정착하고 잘 다닐 수도 없을 것 같다. 난 아직 주변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아직까지 내 수준을 파악 못 하고 배부른 소리 하고 있는 걸까.

난 머리는 나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열심히'는 지금 보면 다 실속 없는 노력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속 없는 것만 추구하다가 낙오자가 되었다. 대학원 공부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었을까. 공부가 재미있어서 했지만, 결코 내가 하는 일(돈 버는일)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대학원 원우들 중에서 학점은 나쁘지만 자기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리 잡은 사람들이고 대충 공부하고 졸업했다. 그런데 나는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우수상까지 받았지만 현재 백수다. 왜 이렇게 살까. 뭐가 문제일까.

내 주변 친구들, 지인들은 다 자기 자리에서 멋지게 성장했다. 대기업, 공무원 등 자리 잡고 행복하게 잘 산다. 그럴수록 과거의 내 선택이 100000000% 잘못된 선택이라고 누군가가 계속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다. 이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은 수천 번도 더 했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타임슬립 웹소설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면. 약 12년 전인 첫 회사 입사 초기로 돌아간다면 난 어떻게 바뀔까. 일단 억지로라도 계속 웃으려고 노력하고, 근력운동을 열심히 하고, 술은 줄이고, 일찍 차를 사고, 침대를 사고, 세종시 아파트 매매 준비를 하고, 꾸준히 주식에 투자하고, 코딩 공부도 꾸준히 하고, 지금 남편을 소개해준 선배에게 똑같이 소개해달라고 해야지. 이런 글을 쓰면서 웃음이 난다. 이런 같잖은 상상을 하면서 내가 마치 재벌집 막내아들이 된 마냥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이렇게 점점 정신병에 걸리는 건 아닐까.

주머니 사정은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취업은 안되고... 많이 내려놔야겠지. 내 수준을 인정하고 현실과 타협해야겠지.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인정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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