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해서 내 존재를 찾았다. 나는 왜 존재하는지, 내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침울했다. 내가 보잘것없다고 느꼈다. 왜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현재 내가 하는 행위와 처한 환경에서 나를 찾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키우고, 집을 치우며, 환경을 생각해서 다양한 실천을 하고, 글을 쓰는. 내게는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말을 거는 자식들과 함께 사는, 간식으로 구운 떡이 아니라 크레이프 crêpe를 능숙하게 만들어 내는, 떡볶이가 주는 위로를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이 모든 것이 나의 존재를 입증이나 하고 있냐고 되물었다. 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육체는 존재하지만 내 머릿속 나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욕구도 기쁨도 없는 인간. 있다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
어느 날 침대에 앉아 루리 작가님의 <긴긴밤>을 읽었다. 이 책은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노든은 코뿔소지만 코끼리 무리와 함께 살았고 펭귄은 펭귄이었지만 코뿔소 노든과 함께 살았다. 다른 펭귄은 아직 본 적도 없다. 이러한 설정 자체에서 우리는 이미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본다. 아버지가 코뿔소인 펭귄. 코끼리와 가족을 이루며 사는 코뿔소. 이들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질문한다. 노든은 한 때 자신을 코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신은 코끼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노든은 코끼리와 펭귄을 진정한 가족으로 여긴다. 그리고 약한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 펭귄에게 바다를 찾아주려고 애쓴다.
“다른 펭귄들이 나를 좋아해 줄까요?”
“물론이지.”
“노든, 나는 누구예요?”
“너는 너지.”
“그게 아니라, 바다에 가서, 여행을 떠나고, 그래서 다른 펭귄들을 만나게 되면, 그 펭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 거예요? 아무리 많은 코뿔소가 있어도, 노든은 노든이잖아요. 나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노든이 나를 만나러 오면, 다 똑같이 생긴 펭귄들 속에서 나를 찾기 어렵잖아요. 노든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대답할 수 있게, 나한테도 이름이 있으면 좋겠어요.”
“날 믿어. 이름을 가져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나도 이름이 없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어. 게다가 코뿔소가 키운 펭귄인데, 내가 너를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지. 이름이 없어도 네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너를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정말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도 나를 알아볼 수 있어요?”
“그렇다니까.”
“다른 펭귄들도 노든처럼 나를 알아봐 줄까요?”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긴긴밤 – 루리
나는 이 글을 보고 꺠달았다. 사실 나는 존재를 입증하고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로 존재하고 나의 존재는 유기적이며, 환경, 상황, 주변인 등에 따라 기본은 그대로 있되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존재라는 것은 그 보다 더 단단하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나의 존재는 단단하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 단단한 존재를 기반으로 변화한다. 그저 그 변화에 놀라지 않고, 당황하지 않으면서 대처하면 된다. 변화에 관한 인정이 필요할 때는 인정도 해야 한다.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나의 단단한, 변하지 않는,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는 그 존재를 사랑해 주는, 주의를 기울여주는,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존재는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단하게 다져야 함과 동시에 변화하는 유기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나의 존재는 알아서 스스로를 입증하고 살아 움직일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주변인의 사랑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