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아무르 Jan 21. 2024

여러 가지 모양의 시간

 1. 나의 시간

나의 시간을 살던 때는 물론 아이들을 낳기 전이다. 그때의 시간은 나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나의 시간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미치도록 빠르게 갔고 해야 하는 것을 할 때는 서서히 흘렀다. 나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썼다. 밤과 낮이 바뀌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들이 다들 뽀송한 향기를 풍기며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찌든 담배 냄새를 풍기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오후쯤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시간의 주인일 때에는 자유로웠다. 책임도 따랐지만 자유롭게 나를 위해서 시간을 썼다. 시간은 내 손안에 있었다. 물론 시간이 내 손안에 있다고 느끼던 때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2. 너의 시간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아이들의 시간을 살았다. 아이들이 눈을 떠서 나를 부르면 나도 일어났고 아이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면 밥을 했다. 배고프지 않아도 밥을 했고 배고파도 아이들 먹여야 해서 제대로 먹지 못했다. 아이들의 일정에 맞추어 내 시간이 움직였다. 내 시간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그 시간은 행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노예가 되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 시간인데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그 시간들. 나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이의 성장으로 인식했다. 아이가 어제보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졌다면 시간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쓰는 아이들은 찬란하게 자랐다. 내 시간을 잠시 아이들에게 내준 나는 시들어갔다. 그리고 일부라도 찾아보려고 몸부림쳤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을 줄였다. 내가 주인일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3. 나이 듦과 늙음

40대가 되기 전까지는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했지, 늙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흔이 되고 흰머리가 급격히 늘면서 나는 늙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보다 이 삼십 대에 듣던 노래들을 찾아들었고, 그들이 나만큼 나이가 들어서 노래하는 모습이, 그러니까 이십 년 동안 최고의 인기를 경험한 후, 점점 잦아드는 인기에도 계속해서 노래하는 모습에, 늙어가는 것에 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늙어가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하려는 노력. 계속 사랑하려는 노력. 계속 열정을 가지려는 노력. 계속 배우려는 노력. 또, 늙어간다는 것은 힘을 잃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전까지는 타고난 건강으로 살아왔다면 마흔부터는 그것을 마이너스로 갉아먹으며 살아간다고 느꼈다. 노력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이끌 만한 힘마저 부족해진다는 말이다. 늙는다는 것은 왠지 과거에 기대어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예전에 듣던 노래, 예전에 좋아했던 책이나 영화, 예전에 내가 했던 것들만 생각하고 거기서 나아가질 못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어디론가 가고 있던 때는 나이를 먹어가는 때였고 노력해야 유지나 나아감이 가능한 때는 늙어가는 때라는 생각이 든다. 늙음으로 가는 시간에서 미래는 또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본다. 죽음을 생각하기 십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미래는 어떤 것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