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 달 살기 Day 20
난생처음으로 푸꾸옥을 찾았다. 푸꾸옥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섬으로 우리나라의 거제도와 비슷한 크기이다.
지리적으로 베트남보다 캄보디아에 더 가까운 것이 묘한 느낌을 준다.
푸꾸옥 섬에는 수많은 해변이 있어 이곳에 오기 전에 어디서 머물지 고민을 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롱 비치(Long Beach)와 사오 비치(Sao Beach)이다. 롱 비치는 이름대로 20km가 넘는 크기를 자랑하는 해변이다. 하지만 즈엉동(Duong Dong) 시내에 위치한 관계로 복잡할 것 같아 제외하였다.
푸꾸옥섬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사오 비치는 물이 맑다고 들었는데 파티도 많이 하고 워낙 사람이 많다고 하여 이 역시 제외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웹 서칭을 하다 론리플래닛의 다음 문구를 발견하였다.
Ong Lan Beach has a series of sandy bays sheltered by rocky headlands. Several midrange resorts in this area service those wanting to get away from everything (apart from the comfort of said resorts).
"옹랑 비치 중형 리조트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 문구를 보고 비교적 덜 알려진 옹랑비치 근처에 숙소를 잡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푸꾸옥 섬의 옹랑비치의 한 리조트에서 글을 쓰고 있다.
푸꾸옥에서는 보내는 첫 아침에, 도보로 1분 거리에 있는 옹랑 비치를 찾았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비치타월을 챙기고, 선베드에서 읽을 책도 챙기고, 물도 챙기고, 돈도 챙겨서 해변으로 향했다. 편안한 선베드에 누워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보는 것을 상상하면서.
옹랑 비치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에메랄드 빛의 물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고, 덜 알려진 지역이라 공용 해변은 거의 관리가 되어있지 않다. 가끔 정체 모를 비닐봉지가 떠다니기도 한다.
생각보다는 해변이 아담했다. 물도 별로 투명하지도 않고, 백사장 곳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약간은 실망이었다.
선베드를 잡기 위해 근처를 기웃거렸는데 아무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구글 검색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해변 바로 앞에 위치한 리조트 소유라 투숙객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해변은 오픈되어있지만 일부 백사장은 리조트 소유인 게 재미있으면서 씁쓸하기도 했다.)
무엇을 할지 몰라 어벙하게 있다가 해변 구석에 가져온 짐을 걸어두었다.
해변 로망을 뒤로하고 일단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수영을 하는 내내 저 멀리 있는 내 짐을 혹여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들어 내 짐이 있는 곳만 바라보며 물놀이를 했다...
모래 위에 비치타월만 깔아놓고 누워있자니 자세 때문에, 벌레 때문에 여러모로 귀찮았다.
내가 생각한 푸꾸옥 여행은 이런 게 아니었다. 또 잘 만족하지 못하는 버릇이 나와버렸다.
짐을 챙겨 다시 숙소로 돌아가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제야 여유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관광이 아니라 살기, 휴식이 목적이라 멀리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몇 년 전의 나였더라면 오토바이를 빌려 매일 푸꾸옥 섬에 있는 모든 곳을 다 가봤을 것이다. 그런 여행은 이제 싫다.
그런데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라 그런지 푸꾸옥에서의 '루틴'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어 오늘 하루 시간을 내 다양한 시간대에 옹랑비치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곳에 대해 먼저 파악하고 내 성향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마침 오전에 수영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아저씨와 바닷물 속에서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그 아저씨는 인근에서 베트남 식당을 하고 있다면서 옹랑비치는 여기 말고도 다른 곳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침 수영을 마치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쉬다가 오후에 그 해변으로 나섰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정도가 걸린다. 작열하는 태양을 등지고 정글 같은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자니, 자전거를 빌려서 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해변에 도착했다.
내가 찾던 한적한 풍경의 해변이다. 일단 해변이 내 숙소 근처 해변보다 훨씬 크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아도 한적해 보인다. 곳곳에 운영 중인 카페에서 선베드를 무료로 쓰게 해 줘 편리하다. 심지어 와이파이까지 된다.
백사장을 이리 걷고 저리 걷고 하다가 적당한 위치의 선베드를 발견하고 그곳에 자리 잡았다.
어떤 쪽은 바다와 백사장이 평평하게 이어지는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내가 자리 잡은 쪽은 모래가 가파른 경사의 벽을 이루고 있어 그 모습이 참 재미있다. 선베드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면, 모래 너머로 바다의 수평선이 맞닿아 있어 그 경계가 모호하게 보인다.
수영을 하다가, 선베드에서 쉬다가, 내가 누워있는 쪽으로 해가 비추면 선베드를 이곳저곳으로 옮겼다가, 맥주도 마시다가 하면서 해가 질 때까지 논다. 해가 지기 직전에 삼색으로 이루어진 석양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렇게 이틀을 옹랑비치를 돌아보며, 이곳을 어떻게 즐길지 생각해 보았다. 요리사가 주어진 식재료를 두고 무슨 음식을 할지 고민하는 마음으로.
먼저, 해가 뜨는 시간에 가까운 옹랑비치에 나가 한적한 해변을 맨발로 걷는다. 낮의 분주함은 온데간데없고 기분 좋은 파도 소리를 듣는다. 파도 소리와 발에 닿는 모래 감촉이 아침잠을 완전히 깨운다. 사람이 없는 바다는 뭔가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아침 루틴'과 조식 후에 숙소 앞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햇빛도 적당하고 항상 자리가 차있는 야자나무 밑 자리들도 충분히 남았다. 자리를 잡고 비치타월을 깔고 바로 바닷물에 퐁당 빠진다. 수영을 하다 지치면 내 자리로 돌아와 타월 위에 누워서 따뜻한 모래와 햇빛의 감촉을 느낀다.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해가 천천히 지기 시작하는 5시에 다시 해변으로 나가 수영하고 노을을 맞이한다. 밝은 회색으로, 연한 분홍색으로 서서히 변하는 하늘을 등지고 바닷물에 몸을 맡긴다. 수영을 하다, 하늘을 보다, 해가 석양으로 치장하기 시작할 때 바닷물에서 나온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석양이 남기고 간 불그스름한 하늘과 땅거미가 진 바다를 바라보다가 완전히 어두워지면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이것이 내가 옹랑비치를 즐기는 방법이다. 철저히 나에 맞춘 방법이다.
여행을 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숙소나 장소를 많이 경험하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던가, 시설이 별로거나 불편하거나,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거나, 등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 종종 볼멘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거듭할수록 느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은 항상 그곳에 있지만 우리에게 맞춰주는 일은 거의 없다고.
아름다움은 항상 거기에 있지만 우리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우리에게 꼭 맞는 모습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아침 바다와 한낮의 바다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