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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Jan 20. 2019

햇빛 알레르기가 나에게 남긴 것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23

지난 6일 동안 물에서 정신없이 놀았더랬다. 한국에서 가져온 래시가드는 방 한구석에 내버려두고, 해변 이곳저곳에서 수영을 하다가, 몸에 햇빛을 쬐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참 즐겁고 평안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푸꾸옥 생활 3일 차가 되던 날 밤에 온몸이 간지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햇빛을 많이 쐐서 약간 따갑다고 생각한 부위가 밤이 되니 너무 간지러웠다. 등, 가슴, 배에 빨간 두드러기가 일어 온몸에 모기가 물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자니 너무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고, 가려운 부분을 조심스레 긁으면 그 부분이 훨씬 더 간지러워졌다. 아픈 건 아닌데 생애 처음 겪어보는 또 다른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라고도 잠깐 생각해보다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간밤에 인터넷을 폭풍 검색하였다. 햇빛 알레르기가 의심되긴 하였다. 하지만 햇빛을 더 많이 쐰 발과 손등은 아무 이상이 없어 확실하게 원인을 판단하지 못했다.


햇빛 알레르기가 맞았다. 햇빛 알레르기는 자외선에 노출될 때 피부에 가려움이나 발진이 나타는 증상이다. 평소 자외선 노출이 적은 부분에서 특히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햇빛 노출이 적은 부위는 피부 세포가 태양에 적응할 수 있도록 쬐는 시간을 서서히 늘려야 한다고 한다.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니 유독 상반신 부위에 햇빛 알레르기가 심한 게 말이 되었다. 몸 부위는 좀처럼 햇빛을 쬘 일이 없고, 한국에서 수영을 해도 실내에서 하거나 야외에서는 래시가드로 꽁꽁 감싸버리곤 했다.


그것도 모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맨 몸에 햇볕을 쬐는 감촉이 좋아 햇빛을 계속 맞았더랬다. 수영할 때도, 해변에 누워있을 때도. 일년 치 광합성을 단 이틀 만에 다 한것 같았다. 결국 무리한 활동은 온몸에 붉은 두드러기가 되어 되돌아왔다. 지금도 온몸이 간지럽다 못해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일은 햇빛 알레르기뿐만이 아니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도 단시간 내에 모든 것을 몰아서 처리하곤 했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문에'라고 하겠지만) 초기에 온신경을 새로운 것에 쏟곤 했다. 이러한 특성은 새로운 일에 금방 질리거나, 빠른 결과를 원하거나, 몸이 소진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곤 했다. 마치 온몸에 난 불그스름한 두드러기처럼.


몸이 너무 간지러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고통을 느끼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든다. 래시가드를 입고 놀걸, 하는 쓸데없는 후회부터 삶에 대한 태도까지... 그동안 많은 일에 있어 성급하고 욕심을 부린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하나의 일에 꽂히면 올인하고 결과를 바로 원하는 것처럼. 많은 목표를 세우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실천하기로 마음먹는 것처럼.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좇아 무리해서 마음에 각인시키려고 하면 마음은 이를 저항한다. 그동안 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단시간 내에 요구하고 결과를 바라 왔던 것 같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시간 내에 많은 것을 바꾸고자 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일도 그렇게 바뀌는 것이 아닐텐데 말이다. 변화는 그리고 결과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러한 법칙을 거스르려고 하면 예기치 못한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씩 천천히 해 나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에 천천히 적응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때로는 잠시 멈추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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