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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 May 19. 2019

베트남과 오토바이 경적소리, 그리고 관점의 차이

베트남 한 달 살기 Day 26

난생처음으로 그랩 바이크를 타 보았다. 오토바이가 인구수보다 많은 베트남에서는 개인 차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를 불러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날따라 그랩 택시가 잘 잡히지 않고 마침 그랩 바이크가 궁금하던 차에 오토바이를 호출해 보았다. 


1분 만에 기사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뜬다. 기사가 건네준 헬멧을 쓰고 작은 오토바이 안장에 조심스럽게 타고나니 앞을 보니 새로운 세상이다. 평소에 길을 걸을 때는 보행자 도로까지 점거해서 경적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오토바이가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나도 공범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관점에서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앞에서 걷는 보행자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어 불안했다.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보행자에게는 일종의 신호가 필요하다. 잘못해서 같은 길로 방향을 틀어버리면 뒤에서 오는 오토바이와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오토바이 운전자는 경적을 더욱 자주 울린다. 충분히 오토바이가 지나갈 공간이 있는데도 하나같이 경적을 울린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내내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가 너무나도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이런 경적을 울리는 행위가 일종의 배려이자 규칙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길을 걸을 때 짜증을 내는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경적 소리가 일종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경적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짜증이 더 이상 나지 않고 홀가분해진 느낌이랄까.


어김없이 오늘도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다 똑같았던 소음에서 제각각 다양한 음을 내는 경적 소리가 들려온다. 길게 끄는 소리, 면 자르듯 짧게 여러 번 쳐내는 소리, 한번 잠깐 울고 마는 소리 등 경적 소리가 참으로도 다양하다. 짜증과 불편함을 넘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경적 소리에 대한 관점이 변해서인지, 이번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베트남을 방문할 때 오토바이의 경적소리를 피할 수 없다면 그 경적 소리가 나를 보호한다고 관점을 달리해보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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