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 May 27. 2019

물건을 대하는 나만의 태도, 철학이 필요하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 곤도 마리에

그녀를 처음 만난 건 평소 애정 하던 '넷플릭스'라는 공간에서였다.

집에 들어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도 옷장을 매우다 못해 암체어에도 하나둘씩 걸려 있는 옷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좁은 공간에 하나둘씩 짐을 들여놓다 보니 내가 사는 건지, 짐이 사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과연 자신을 '정리 전문가'라고 수줍게 소개하던 그녀답다. 

그녀의 말은 내 안에서 계속 맴돌아 시중에 나온 그녀의 모든 책을 사 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발견했다.




모든 물건의 가치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최근 정리 현장에서 떠올린 키워드 중 '연민'이라는 것이 있다. 연민은 자연이나 예술, 혹은 누군가의 인생에 공감함으로써 일어나는 정서인 동시에 사물의 본질을 느끼면서 드는 마음이기도 하다. (중략)
정리를 통해 나 자신과 물건의 연결 고리를 굳건히 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싼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본래 갖고 있는 물건을 소중히 하는 마음, 나와 물건이 서로를 지켜준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만일 괜히 불안해질 때가 있다면 정리를 해보자. 물건을 하나하나 손에 들고 설레는지 설레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버리지 않고 남겨둔 물건이 있다면 나 자신처럼 소중히 다루자. 하루하루가 설레는 마음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책과 방송에서 소개된 '곤마리 정리법 (The KonMari Method™)'을 처음에 시도할 때만 해도 이래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그때만 해도 정리를 잘하는 방법론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것에는 방법론 그 이상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일종의 철학이랄까, 물건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나와 물건의 관계를 강조한다. 단순히 물건을 '정리한다'는 행위를 넘어 그 과정에서 현재 소유하고 있는 물건과 나의 연결 고리를 파악하다 보면 내 삶의 다층적인 삶까지 돌아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물건 하나하나를 오감으로 느끼면서 이것이 나를 설레게 하는지 물어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일 테다. 


정리를 결심한 스스로에게 부과할 첫 번째 과제는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이상적인 생활'을 떠올리는 것이다.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써봐도 좋고, 인테리어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방의 사진을 오려도 좋다. "그런 것보다는 당장 정리를 시작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런 마음이 정리를 도루묵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상적인 생활상을 머릿속에 그리고 나면 왜 정리를 하고 싶은지, 정리가 끝난 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말끔히 정리된 상태를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 정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질러진 원상태로 얼마나 많은 날을 보냈는가. 돌이켜보면 이제 청소할 때가 되었다,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정리를 시작한 게 그 이유가 아닌가 싶다. 정확히 어떤 생활상을 원하는지 아무런 그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는 데 집중을 하고, 며칠 후에 원상태가 된 집에서 생활을 이어나갔다. 자연스럽게 정리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리에도 순서가 있다.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자. 그러면 남길 것과 버릴 것에 대한 판단도 빨라지고 방도 점점 깨끗해진다. 반대로 순서가 틀리면 정리 속도가 느려지거나 나중에 다시 지저분해진다. 한창 정리를 하는 도중에 문득 옛날 사진을 발견하고 추억에 빠져들거나 한 적이 누구나 한 번씩은 있지 않을까.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설렘에 대한 판단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의류는 그 첫 단계로 안성맞춤이다. 그런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 책 덥석 사진 같은 추억의 물건에 손을 대선 안 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백 번, 수천 번은 집안 정리를 했던 것 같다. 일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그녀는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정리하라고 역설한다. 그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대학생 때부터 기숙사로, 자취방으로 이사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많은 물건을 버렸다. 이사할 때마다 100L 종량제 봉투에 꽤 많은 물건을 버린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 물건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쌓여만 갔다. 뭔가 문제가 있다 싶었다. 개중에서도 서류와 추억의 물건이 넘쳐났다. 저자의 말대로 '설렘에 대한 판단력'이 아예 없다 보니 무엇을 버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냥 그대로 보관해 둔 것이 계속 모인 것이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의류부터 정리를 시작해보았다. 모든 의류를 방 한편에 모았다. 이 물건이 나를 설레게 하는지 여부로 하나하나 손에 들어보았다. 처음에는 설레는 게 도대체 뭔데?!, 라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계속 하나씩 보고 만지다 보면 설레는 옷이 어떤 건지 느낌이 온다. 못 믿겠다고? 한번 해보시길. 그런 느낌이 안 온다면 이 글에 악플을....... 아니 저자에게 악플을.........(미안합니다.)


세미나의 가치는 참가해서 강의를 듣는 그 순간에 있다. 또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실행을 막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료들이다. 자료가 있기 때문에 별로 실행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세미나는 '받은 자료는 전부 버린다'는 각오로 수강하자. 버리고 나서 후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세미나를 들은 뒤, 배운 내용을 곧바로 실천하면 된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서류, 자료 정리를 시작했다. 대학생 때부터 서른을 넘긴 지금까지 수업, 워크숍, 세미나 등에서 모은 자료를 계속 모아 왔다. 언젠간 유용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나름의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자료들을 참조한 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정보를 받아 적기만 하고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큰 맘먹고 하나하나씩 자료를 살펴보며 버려야 할 자료를 걸러냈다. 꼬박 며칠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정보는 그 자체로 있을 때는 죽은 것이며 활용해야 살아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몇몇 자료는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아직도 가지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부분의 서류를 버렸다. 집 공간이 한층 넓어 보일 정도였으니 자료(아니 활용되지 않는 종이 쓰레기)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리고 다짐했다. 정보를 전부 활용한다는 각오로 자료를 모을 것이라고. 그럴 각오가 없으면 간단하게 컴퓨터에 정리 후 다 버릴 것이라고. 



그래서 그녀 말대로 했더니 잘 되었냐고?

흠...... 적어도 무엇이 나를 설레게 하는지 판단 기준이 생겼다고 답하면 충분하려나...?

그리고 너무 많은 옷을 버려서 요즘에는 내가 좋아하는 옷만 자주 입게 됐다고 말한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100년 전 책에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