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 라이프 - 줄리 포인터 애덤스
와비사비 (わびさび)
작년 초에 일본을 여행하다 발견한 작은 술집의 이름.
당시에는 와비사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단어가 주는 맛이라고나 할까, '와리가리'랑 비슷한 입에 착착 감기는 어감인 게 재미있어 그곳에서 저녁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잊고 있었는데 올해 초 <와비사비 라이프>를 읽고 와비사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와비는 단순한 것, 덜 완벽한 것, 본질적인 것을 뜻하고, 사비는 오래된 것, 낡은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언뜻 보면 삶의 철학 혹은 태도를 나타나기에는 너무나도 단순한 단어인 것도 같다.
그런데 이 와비와 사비를 합쳐서 곱씹어볼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것, 덜 완벽한 것, 오래된 것, 낡은 것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단어의 울림은 깊다.
어떤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사려 깊은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님 한 명 한 명을 어떻게 대접할지 생각해두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데 거창한 것은 부차적일 뿐이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맛있는 음식, 좋은 술이 있어야만 지인과 함께하거나 지인을 초대하는 시간이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 스마트폰을 잠시 치워두고 바로 앞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행위가 함께하는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럴 때야 비로소 지금, 여기에 우리가 함께 이어져 있다는 정신적 유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와비사비에서는 단순함이 최고의 미덕이다. 주방에서 불필요하고 복잡한 요리로 재료의 맛을 덮어버리지 말고 재료 고유의 풍미가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와비사비를 실천할 수 있다. (중략) 또한 덜할수록 더할 수 있다는 와비사비의 정서와도 통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손님을 초대할 때 과하게 꾸미고 치장하는 경향이 있다. 손님 초대를 단순한 상차림의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중략) 재료가 가진 특별한 풍미를 이끌어냄으로써 한 번에 한 가지 음식에서 오감을 즐겁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초대의 즐거움이다.
내가 유별난 거일수도 있겠지만 지인의 집에 초대받을 때 한상 가득 대접을 받으면 이상하게 뭔가 불편하다. 차려진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시간을 내어 음식을 준비해 줬다는 고마움에 많이 먹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을 느낄 때도 있다. 결과는 과식,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소화제를 찾는다.
지인을 집으로 초대할 때 우리는 너무 과도하게 준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많이 준비할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치장과 음식을 정성과 동일시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단 몇 시간의 시간을 위해 며칠 동안 분주하게 되고 몸이 지친다. 최악은 부부의 경우 남편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자 혼자 준비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치워두고 단순하게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평소 먹는 것에서 몇 가지 반찬이나 다른 메인 요리 하나를 더하면 충분하다. 손님을 맞으려고 준비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손님과 함께하는 시간에 쓰는 것이 더욱 자주 지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손님이건 주인이건 느긋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간단하고도 유용한 팁이 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기계 장치를 끄는 것이다. 늘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이라면 시계도 풀어두자. 모임을 갖기 전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떠올려보라. 식사 외에는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말자.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면 완전히 느긋해지지 못한다. 모임을 가진 뒤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쉬었다가 청소나 정리를 하자.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지 염두에 두고 있으면 산만한 요소들을 차단하고 함께 있는 사람과 공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바로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가장 오래도록 진하게 남는 순간은 아닐지.
모든 만남에서 본질은 마주하고 있는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 있는 그 사람에 오롯이 집중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과 함께하는 본질적인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에 오롯이 집중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는 것 같다.
지금 나와 대화하고 있는 친한 친구도 내일부터 영영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곧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으로 스마트폰으로 동시에 다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행위는 만남을 아무런 가치도 없게 만든다. 그 공간에는 나도 없고 그도 없게 된다.
와비사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을 보고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마법 같은 기적의 순간을 만들 것,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사색하며 정돈된 삶을 살 것, 바로 이것이 와비사비의 핵심이다. 정돈된 삶이란 물리적으로 정돈된 삶뿐만 아니라 정돈된 마음가짐을 뜻한다.
물건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감각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낼 때가 있다. 모든 것이 당연한 것 같고, 모든 일들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그러다 보니 일에서, 삶에서 더 큰 무언가를, 거창한 것을 좇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작은 것과 평범한 것에서 만족을 못하다 보니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감사히, 모든 것을 아이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어떻게 하면 삶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걸까? 일상이 시들하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삶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까? 와비사비에서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평소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한다. 이웃집 뜰에서 풍겨오는 재스민 향기, 완벽하게 잘 삶은 달걀, 담장에 드리운 햇살 등과 같은 것에서 말이다. 뭔가 보람찬 일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활기차게 걷거나 등산하기, 바다 수영하기, 테라스에서 독서하기, 음악 듣기, 편지나 일기 쓰기 등이 좋은 시작이다. 와비사비에 맞는 물건이나 순간들은 이따금 '쓸쓸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풍긴다. 언뜻 우울하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이런 감정은 더 환하고 즐거운 '생활의 기쁨'과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사람들은 생활에서 기쁨을, 일상에서 예술을 찾으려는 와비사비 정서를 이미 누리고 있었다.
일상에 지친 나를 달래기 위해 꼭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내면 여행지 못지않은 삶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막상 여행을 가도 무언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누군가가 그랬다. 여행의 진짜 즐거움은 '여행'이 아니라 '살기'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곧 여행이고, 그 여행의 깊이와 즐거움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번 휴가에는 어디로 떠날까, 가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느껴볼까, 가 되지 않아야 할까.
그게 인생이지(C'est la Vie!) 이 말은 어떤 일이든 순응하는 와비사비 정서와 매우 비슷한 프랑스 격언이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정도의 의미겠다. 이 말은 주로 기대만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사용한다. 적절한 때 사용한다면 정말 용납하고 싶은 않은 상황에서도 보다 관대해질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어떤 일이든 순응하겠다, 는 의지는 더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분별없는 순응은 안 한 것만 못하다. 모든 일에 순응하기보다는 내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한 용기가 좋은 순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