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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 YU Aug 01. 2017

한국에만 있었다면 몰랐을 것들

PURA VIDA_034






  사람들은 종종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보라고 말한다. 그래야 보는 눈이 달라진다면서.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도 별거 없네,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달라진 점이 있었다. 한국에만 있었다면 영영 생각해 보지 않았을 법한 문제들이 있었다. 인종차별, 노숙자 문제, 환경오염이다.


  여기에 와서 가장 싫었던 것, 그리고 지금도 가장 싫은 것이 바로 인종차별이다. 슈퍼 계산대에서 물건 하나를 빼고 담아 주고 나서 뒤에서 낄낄거리는 것, 빵집에 들어가자마자 중국년이라며 구시렁대는 것, 차 안에서 큰소리로 조롱을 하며 지나가는 것, 관광지에서 거스름돈을 적게 내주거나 바가지를 씌우는 건 다반사. 일단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다. 해외 어느 곳에서든 인종차별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역시 직접 겪어 봐야 아는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보통 그 자리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해결책이 없을까 궁리도 많이 해 봤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당할지 모르는 인종차별은 늘 나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종종 이곳 사람들과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길에서 남자들이 나를 보면서 '예쁜 중국 여자'라고 부르며 지나간다고 불평하면 같이 욕을 해 주면서도 항상 덧붙이는 말은 그래도 그게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날 보고 예쁘다고 하든 못생겼다고 하든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문제는 그게 아닌데 말이지. 백인 여자에게 '어이, 예쁜 미국 여자!' 이렇게 부르는 일은 없잖아. 인종차별에 대한 글을 쓰자면 논문 한 편을 쓰고도 남을 것이다. 한국에도 중국인이나 일본인, 결혼이주민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인들이 외국 가서 인종차별 좀 당해 봐야 안 그러려나. 인종차별 문제는 영영 인류의 숙제로 남을 것 같다.


  그다음으로 많이 생각해 보는 문제는 노숙자 문제이다. 아마 길에서 매일 보는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생각을 하기 때문일 거다. 코스타리카에 와서 알게 된 독일 여자애가 있다. 독일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데 그 아이의 말에 따르면 여기 코스타리카는 노숙자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길에서 상태가 심각한 노숙자를 보고 그를 업어다가 노숙자 센터에 데려다 놓은 적도 있다고 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말 심각하긴 하다. 블록마다 쪼그려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볼 수 있다. 하루는 출근길에 두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아이를 안고 더러운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는 여자 노숙자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면 돌아가서 돈이라도 얼마 쥐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돈 몇 푼이 노숙자 생활을 청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곳 정부에서도 노숙자들을 위해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행사를 준비하여 목욕과 이발 등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음식과 옷도 제공해 준다. 가끔 교회에서 봉사자들이 나와 공원에서 노숙자들에게 배식을 하는 것도 봤다. 결국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 그들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 남들보다 못나서 노숙자가 된 건 아닐 거다. 상황이 그렇게 된 거고 이제는 본인들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게 된 거지. 하지만 그들을 위한 센터나 숙소를 마련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도움을 주는 것에도 말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안 좋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환경오염 문제. 하루는 홈스테이 동생이 집 근처 편의점에 우산용 비닐을 설치한 걸 보고는 환경 파괴라며 불평을 하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 년의 반이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는 코스카리카에서 우산용 비닐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거의 모든 공공시설이나 가게에서 우산용 비닐을 사용하는데 말이다. 그 비닐을 수백 번 사용하면서도 쓰고 난 비닐들이 어디로 가는지, 재사용은 가능한지, 환경에 안 좋은지 따위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슈퍼에서 사용하는 봉투도 마찬가지다. 그 이후로는 장을 보러 갈 때 큰 가방이나 장바구니를 들고 가고, 웬만하면 물건을 사고 나서도 봉투나 쇼핑백을 안 받으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쉽지는 않다. 우리는 무슨 권리로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편리함을 추구하는 걸까.


  어떻게 보면 모두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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