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 논리 #5
통계적 삼단 논증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확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논증이 친절하게도
빨간 공 5개와 파란 공 3개가 든 주머니에서 임의로 꺼낸 공 3개가 모두 파란 공일 확률은 약 2%다
∴ 빨간 공 5개와 파란 공 3개가 든 주머니에서 임의로 꺼낸 공 3개가 모두 파란 공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특정 사건의 발생 확률은 정확하게 제시해준다면 논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건이든 발생 확률이 2%라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대개의 경우엔 맞겠죠? 그러니 위 논증은 올바른 편이에요.
하지만 위 논증이 건전한 것인지, 그러니까 올바른 동시에 전제가 참이기도 한지 판단할 수 있을까요? 빨간 공 5개와 파란 공 3개가 든 주머니 A에서 공 3개를 임의로 꺼내면 둘 다 파란 공일 확률은 정말로 2% 정도일까요? 그걸 알기 위해서 확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거죠.
정확히 말하면 A주머니에서 아무렇게나 꺼낸 공 3개가 모두 파란 공일 확률은 1/56입니다. 이 말은 주머니 A에서 공 3개를 꺼내는 방법이 모두 56가지인데, 그중에서 파란 공만 쏙쏙 3개를 짚어내는 방법은 1가지 밖에 없다는 걸 의미해요.
어떤 사건 E가 발생할 확률 Pr(E)는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의 수를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로 나누어서 구하거든요.
자,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간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순열permutation은 여러 값을 추출한 뒤에 순서대로 배치한 걸 의미합니다. 가령 주머니 B에 빨간 공과 파란 공, 노란 공, 초록색 공이 각각 1개씩 들어있다고 해보죠.
여기서 공 4개를 뽑아 순서대로 배치하는 방법은 몇 가지일까요? 24가지입니다. 일단 첫 번째 공은 네 가지 색깔 중 어느 것이나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따라올 두 번째 공은 남은 세 가지 색깔 중 어느 것이나 될 수 있고요. 세 번째 공은 남은 두 가지 색깔 중 어느 하나가 될 수 있겠죠. 물론 마지막 네 번째 공은 남은 단 하나의 공이 되어야 하겠죠. 그래서 4 x 3 x 2 x 1 = 24가지 경우가 나오는 겁니다.
이런 순열을 간단하게 표현할 때 기호 P를 사용합니다. 총 n개의 값 중 m개의 값을 추출한 후 순서대로 배치하는 방법의 수는 nPm으로 나타내죠. nPm은 n!/(n-m)!입니다. 주머니 B의 경우엔 4개의 값 중 4개를 꺼내어 배치하는 것이니까 4!/(4-4)! = 4!/0! = 24/1 = 24가 되죠. (0!은 1입니다.)
가령 주머니 B에서 공 2개를 꺼내어 만들 수 있는 순열은 4!/(4-2)! = 4!/2! = 24/2 = 12개가 됩니다.
그렇다면 빨간 공 3개와 파란 공 1개, 노란 공 1개, 초록색 공 1개가 든 주머니 C에서 공 6개를 뽑아 만들어 낼 수 있는 순열은 몇 개일까요? 6!/(6-6)! = 6!/0! = 120/1 = 120개가 맞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C 주머니에는 서로 구분할 수 없는 똑같은 공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에요.
120가지 순열 중에서는 아래와 같은 순열이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순열들은 결국 같은 순열이에요. 왜냐하면 빨간 공은 완전히 동일하니까요. 이렇게 동일한 값을 둘 이상 포함한 순열을 동자 순열 permutation of multiset이라 부르는데요. 이 6개 동자 순열은 실상 1개로 취급해야 하죠.
만약 동일한 값들이 동일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빨간 공에 번호가 쓰여 있어서 서로 구분할 수가 있었다면? 이 빨간 공들로 만들 수 있는 순열은 총 3!/(3-3)! = 3!/0! = 6/1= 6개가 되겠죠? 3개 중 3개를 뽑아 만드는 순열이니까요. 그런데 이 6개는 사실상 같은 순열이죠? 그래서 우리는 최초에 구한 120개를 6개로 나누어주어야 해요.
따라서 주머니 C에서 공 6개를 뽑아다 만들 수 있는 순열은 총 120/6 = 20개가 됩니다.
조합combination은 여러 값을 추출한 구성한 묶음을 의미해요. 순열과 달리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래 6가지 경우는 모두 다른 순열이지만, 같은 조합이에요.
주머니 B에서 공을 3개 뽑아서 만들 수 있는 순열은 24개입니다. 4!/(4-3)! = 4!/1! = 24/1 = 24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일단 뽑은 공 3개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순열은 6가지예요. 3!/(3-3!) = 3!/0! = 6/1 = 6죠? 이 6가지 경우는 사실 동일한 조합입니다. 그래서 주머니 B에서 공을 3개 뽑아 만들 수 있는 조합은 24를 6으로 나눈 값, 4가 돼요.
조합을 나타낼 땐 기호 C를 활용합니다. nCm는 총 n개의 값 중 m개를 추출하여 만든 조합의 개수를 의미하고요. 계산할 땐 n!/(m!x(n-m)!)으로 나타내요. 그러니 주머니 B에서 공 3개를 꺼내어 만들 수 있는 조합은 4!/(3!x(4-3)!) = 4!/(3!x1!) = 24/(6x1) = 4가지가 되죠.
로또 당첨 번호가 바로 조합에 해당해요.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추첨 기계에서 나올 6개 숫자를 정확하게 맞춰야 하지만, 그 순서까지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가령 1, 2, 3, 4, 5, 6을 찍었다면? 추첨 기계에서 공이 1, 2, 3, 4, 5, 6 순서대로 나오든 4, 1, 2, 6, 5, 3 순서대로 나오든 상관이 없죠. 그래서 로또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조합의 수는 45개 값에서 6개를 추출하여 만드는 조합의 수죠. 45!/(6!x(45-6)!)가 되는 겁니다. 총 8,145,060가지 경우가 가능하네요.
다시 주머니 A로 돌아옵시다. 이 주머니에서 공 3개를 꺼냈더니 하필이면 모두 파란색일 확률은 어떻게 구할까요? 일단 주머니 A에 파란 공이 3개 있으니 파란 공 3개를 꺼내는 방식은 1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냥 집어낸 공이 모두 파란 색인 경우죠.
그렇다면 주머니 A로부터 공 3개를 뽑아내어 나타낼 수 있는 방식은 모두 몇 가지일까요? 일단 여기서는 순열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머니에서 나온 공의 색깔과 함께 그 공이 몇 번째로 나온 것인지까지 따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죠. 공 3개를 동시에 꺼내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나온 공 3개에겐 순서가 없어요. 쌍둥이 같은 거죠. 형이나 동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합을 사용합니다.
총 8개 값에서 3개를 꺼내어 만드는 조합의 수는? 8!/(3!x(8-3)!) = 8!/(3!x5!) = 40,320/(6x120) = 40,320/720 = 56개군요.
따라서 주머니 A로부터 공 3개를 뽑았더니 하필 모두 파란 공인 경우는 모든 가능한 경우 56가지 중 1가지에 불과하므로, 그 확률이 1/56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겁니다. 백분율로 나타내면 2%가 조금 못 되네요.
이렇게 우리는
빨간 공 5개와 파란 공 3개가 든 주머니에서 임의로 꺼낸 공 3개가 모두 파란 공일 확률은 약 2%다
∴ 빨간 공 5개와 파란 공 3개가 든 주머니에서 임의로 꺼낸 공 3개가 모두 파란 공은 아닐 것이다
이 논증이 올바를 뿐만 아니라 (전제가 참이기 때문에) 건전하기까지 한 훌륭한 논증이라는 걸 판단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