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고전이다
서머싯 몸(오늘 이 글에서는 모옴 선생으로 부르기로 하자). 이번 달 초에 모옴 선생의 [인생의 베일]을 읽고서 너무나 매료되어 다른 책을 더 보고 싶었다. 모옴 선생의 저작 중 시중에 가장 잘 알려진 이 책은 표지부터 강렬하다. 색채와 표현방식뿐 아니라 인물의 표정까지. 글의 소재가 되어주었던 폴 고갱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 다시 표지를 보니 주인공이 생생히 살아난 느낌이 든다.
만약 [달과 6펜스]를 먼저 읽었더라면 굳이 다른 책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모옴 선생의 섬세한 내면의 묘사와 심미적인 풍경 묘사가 역시 벼린 칼처럼 번뜩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소 거북살스러운 느낌이 책 전반에 펼쳐져 있기에 작가에 대한 강한 편견이 생기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만약 이 책을 먼저 보았다면 다른 책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인간의 가장 존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면서도 그곳에서조차 완전하지 못한 모순을 발견해 내는 모옴 선생의 통찰력은, 전혀 다른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더 잘 드러난다.
책은 1인칭 작가 시점으로, 화자 역시 글을 쓰는 작가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야기와 등장인물 면면에 대한 평가는 모옴 선생 자신의 견해라고 믿을만하다. 물론 폴 고갱이라는 실존 인물을 다루기에,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인가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역시 소설이다. 책이든 극이든 어떤 인물에 대해 아무리 평범한 사람으로 설정하려고 해도 소설적 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 글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라서 도저히 실존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솔직히 1920년대에 나온 책이니까 망정이지 오늘날 살아있는 작가였다면, 주인공이 순도 높은 소시오패스인데 그를 다소간이라도 좋은 평가를 내렸다며 욕을 얻어먹었을 것이다. 모옴 선생이 2차 세계대전 시대를 살아낸 옛날 사람이므로 모든 것이 어느 정도 희석된다.
모옴 선생은 '유미주의 작가'로 분류된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마도 [달과 6펜스]가 그의 이런 명성을 널리 퍼뜨리지 않았을까 싶다. 글의 소재는 분명 실존했던 고갱이지만, 그리고 그의 삶을 어느 정도 차용하고,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도 고갱의 그림으로 여겨지지만, 모옴 선생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예술 자체나 마찬가지인 어떤 인물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 자체가 굉장히 예술적이라고 느꼈다. 순간순간 예술에 몰입됐다. 아름다움을 탐하고, 그것을 표현해 내고 싶은 욕구를 충동질하는 힘이 있다고 느껴졌다. 좋은 글을 볼 때는 나도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책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모옴 선생은 글보다는 그림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제목은 왜 [달과 6펜스]일까. 여기서는 내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그런데 돌연 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렇다 할 암시도 없이, 프랑스로 떠나버린다. 모두들 분명 불륜을 저지르고 어떤 여성과 떠났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떠났다. 아무런 죄책감도 안락한 삶에 대한 그리움도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전혀 없었다. 가장이 떠나버려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은 가족들에 대한 동정심도 없었다. 그들이 죽어도 상관없었다. 그는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그릴 수밖에 없는 충동만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는, 자신에 대한 연민도 없는, 불가해한 사람. 누군가에게 칭송을 받거나, 누군가와 소통을 하거나, 명성을 얻고 돈을 버는 일 따위는 '개나 줘버린' 태도로 일관한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혹은 무언가가 그를 사로잡은 듯 서툰 붓질로 그림을 그린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아무에게도 팔지 않을 그림을 말이다. 달과 6펜스는 닮았다. 동그랗고 은색이다. 그러나 달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잡히지 않는 천체이며 6펜스는 손에 쥘 수 있는 적은 돈이다. 스트릭랜드는 달을 바라보다 죽었다. 손에 쉬이 잡히는 6펜스를 내다 버리고.
돈과 명성을 좇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 그 질문을 모옴 선생은 굉장히 불편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던지는 셈이다. 스트릭랜드는 천재적인 예술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 외에는 정말 혐오스러운 인간이다.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주인공을 그릴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 주변부의 인물들도 가만히 보면 사실 모순 투성이다. 도덕이라는 것도 한낱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범인들이 바라고 원하는 부유하고 안락한 삶이 정말 추구해야 할 가치인 것인지, 이 불쾌한 천재와 대비하는 방식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니다. 나는 인생의 허무함을 많이 느끼고 자라왔더라도 삶에 대한 긍정을 버린 사람은 아니다. 그건 인간의 보편적 선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신앙으로 기인한 것이다. 모옴 선생과 나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자비 없이 해부해버리는, 인간 됨의 파산 혹은 절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고전은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 됨의 파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는 지식은, 파산되지 않은 상태가 있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파산되지 않은 모습이 분명 있다. 그래서 우리는 파산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절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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