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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 진 맑을 아 Jul 14. 2020

죽음이 남긴 심판


주어진 삶에서 운명을 다하고 하늘의 별이 되는 과정을 통상적으로 '죽음'이라고 일컫는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간 것에 대해서 슬퍼하고 추모하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슬프다는 이유로 모든 죽음이 인정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행보를 이어나갔기에 많은 이들의 주목과 존중을 받던 고위 관직자라고 해도 말이다.


몇 년 동안 참아왔던 일을 용기 내서 고백한 피해자에게 들려온 답변은 깊은 사과의 한 마디가 아닌 깊은 땅거미로 꺼져버린 고인의 주검이었다. 살아생전 그가 달려온 궤적이 명예롭고 이타적이었다고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은 사람들은 소위 당당하게 법의 심판 앞에 나서는데 그는 왜 죽음을 택함으로써 남겨진 사람에게 영영 기억될 아픈 상처를 주었을까. 명확하게 죄질이 밝혀지지 않은 그를 과거의 업적만으로 추모하는 일은 또 다른 사회의 악을 초래하는 것이다.


출근길 챙겨보는 뉴스 페이지 중 사설에서 '죽음이 끝이라는 교훈을 남기는 사회는 위험하고 불행하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성범죄는 체육,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계속해서 야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앞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z세대에 초점을 단순히 마케팅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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