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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 진 맑을 아 Aug 18. 2020

2019년 2월 7일자 일기


"환영해요. 지구의 중심에 오게 된 것을."

14시간 비행 끝에 옆자리 승객은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공항 문이 열렸을 때 야자수 나무가 보여서 여행을 온 기분이 드는 제주도 공항과는 다르게 아무런 특별함이 없던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을 통해 그렇게 나는 뉴욕에 도착을 했다. 이 도시가 내게 준 첫인상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마시러 갈 수 있다는 것이였다. 대부분의 카페가 아침 7시에도 오픈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얼마나 바쁜 현대사회를 나타내는지는 읽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신호등이 있지만 아무도 초록불과 빨간불을 지키지 않는 이상한 동네였다. 마치 비는 내리지만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던 벤쿠버와 같았다. 으레 여행을 가면 익숙한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기에 나도 그들의 보폭에 발맞춰 빨간불에 열심히 횡단보도를 건너다녔다. 걷는 내 옆으로는 옐로우 캡이라고 불리는 뉴욕의 상징 택시들이 도로를 가로질렀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간 센트럴파크는 역시 별로였다. 현실은 각종 새들의 배설물들로 언덕은 뒤덮여있었고 노숙자들이 너무 많아서 공원의 상쾌한 공기보다는 탁한 지하 냄새들을 느낄 수 있었다. MOMA는 전시보다 한 면이 전체 통유리창인 로비의 웅장함에 휩싸였었으며 위생 상태로 악명 높은 메트로 플랫폼은 파리를 다녀온 나로써는 견딜만했다.


기차를 타고 교외로 벗어나서 찾은 한적한 시골 동네를 가서야 뉴욕을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미술관을 만났다. 눈이 채 녹지 않아 얼어 붙어있던 그 동네는 정말 인적이 드물었다. 오고 가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 시간을 감내하고 쌓아온 추억은 내 기억의 편린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 나는 버츠 커피 바 자리에 앉아 서서히 어두워지는 도심을 바라보며 아이스 라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3시간 후 출국을 위해 존에프케네디 공항으로 떠나야 하기에 마음은 조급하지만 행동은 여유롭기 그지 없다. 누구나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어하는 도시에 내가 다녀간다. 어렸을 때부터 품고왔던 그 설렘이 일주일간 머무르고 감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다. 커피의 얼음이 어느새 많이 녹았다. 이것은 아쉬움은 묻어두고 지금은 공항으로 떠나야 한다는 신호같다.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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