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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 진 맑을 아 Sep 09. 2020

광채 잃은 인생

잠겨있던 핸드폰 화면이 페이스북 알람이 울리며 깨어났다. 3년 전 나의 게시물이라는 팝업을 누르니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하던 시절이 재생되었다.  모니터 화면 우측 하단을 흘낏 보니 전자시계 창이 보인다. 2020년 9월 9일 수요일 오후 3시 56분이다. 믿을 수 없게도 2020년의 절반 이상이 흘렀다. 일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언택트, 비대면, 화상회의 등의 키워드가 이제는 매일 아침 조간신문 1면에 실리고 있다. 출근길에 매일 지나가는 지하철 개찰구에서도 카드를 찍으면 '마스크를 착용하세요'라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회사에서도 여러 명의 식사를 지양하는 권고조치가 내려왔고 그로 인해 점심 도시락을 매일 싸들고 다닌다.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서야 오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늘이 높고 푸르며 빛이 가장 따뜻하게 스며드는 계절인 가을인데 광채 잃은 삶을 살고 있다.


하반기를 맞이하며 올해를 잠깐이나마 되돌아보았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가던 해외여행, 음악을 들으러 자주 가던 금요일 클럽, 친구들과 여름마다 가던 페스티벌, 소중한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 등을 하지 못해서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 퇴근 후 저녁 약속 대신 운동을 하며 얻게 된 보람, 외식을 줄이고 스스로 요리하며 늘어난 요리 실력, 밀리지 않는 집안일, 여유 있는 여가시간 덕분에 늘어난 독서량과 같이 나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책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는다." 우리가 읽는 책 속의 문장들은 마침표만 찍힌 채로 글이 완성되어있지 않는다. 상황에 맞게 문단이 바뀌어있고 긴 호흡을 끊어줄 쉼표도 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2020년이라는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전과 바뀐 게 있다면 쉼표를 발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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