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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글로제이 Feb 20. 2022

역지사지가 안돼서...

니 자신을 알라

남편과 한국에 온 지 벌써 6개월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확진도 받고, 남편 비자도 연장하고, 코로나 백시 2차와 3차 부스터 샷도 맞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요즘 한국어 학원에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회사 일이 많아져서 신입 사원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요즘 블로그, 유튜브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새벽 5시 기상 챌린지도 신청해서 1월에는 모두 성공하고, 2월에는 마지막에 아파서 성공을 못했네요. 바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게 잘 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 시간을 쪼개어 쓰려고 노력했지요.


문제는 남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의 소통이 문제입니다.

언어 문제냐고요? 언어가 문제 되던 시기를 이제 지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의사소통이 안돼서 대화가 막히는 경우가 있지만, 이게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요즘 문제라면 문제인 것은 남편이 한국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는 거예요.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오후에 저희 회사 일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아르바이트 식으로 제가 뭔가 요청하면 그걸 확인해주거나, 간단한 프로그램을 엑셀로 만들어주거나 하는 일은 맡아서 하고 있어요.


가끔, 일은 하다가 둘이 안 맞는 게 있어서 사소한 문제로 언쟁이 시작되면 그게 큰 싸움으로 번지는데, 심각할 경우는 에콰도르로 돌아가겠다면 가방을 들고 나오는 경우예요. 사실 지난주에 일을 하다 또 이렇게 크게 싸움이 일어났어요. 감정이 격한 남편이 고양이들은 부탁 한다면서 방에서 책가방을 하나 덜렁 들고 두꺼운 잠바를 입고 나왔어요. 에콰도르에 돌아가겠다고. 그때 시간이 저녁 6시쯤이었던 것 같아요.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무작정 책가방을 들고나가겠다고... 물론 진짜 어딜 가진 않았어요. 그 날은 남편과 침대 위에 손을 잡고 앉아서 차분히 얘기로 풀어보려고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한 번 싸우면 며칠은 그 여운이 남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에콰도르에서 어땠지?

저도 몇 번인가 한국에 가겠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물론 남편처럼 충동적으로 가방을 들고나가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한국에 갔다 오면 어떻겠어? 한국에서 일을 하면 어떨까?" 이렇게 얘기를 시작했었는데, 물론 그 당시엔 저도 맘이 많이 힘들 때였고, 남편도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한국에 가겠다'는 선언이 심각하게 들렸을 거예요. 


국제커플의 어려움 중 하나가 이런 점일 것 같아요. 서로의 국가에 얼마나 더 익숙해지면 행동이 달라질 진 아직 알 수 없지만, 싸움이 심해지면 최종적인 선언은 "내 나라로 돌아가겠어"가 되거든요. 결혼 초기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욱하는 마음에 집을 나갔다 오거나, 친정에 가거나.. 신혼 때는 종종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국가가 다르면 '우리 집'이 아닌 '우리나라'가 되니까요. 


특히, 저희처럼 국가 간 거리가 아주 먼 나라는.. 돌아가겠다는 의미는 암묵적인 '이혼'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에콰도르에서 '한국에 갔다 올게'라고 말할 때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전제 하에 얘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남편은 그걸 이혼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했어요. 전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둘 사이가 좋을 때 몇 번 설명을 하곤 했어요. 나는 이혼을 할 생각은 없다. 나중에 또 내가 한국에 가겠다는 얘기를 하면 그냥 순수하게 한국에서 일을 하고 기회를 만드는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는 의미로 이해해달라. 저 나름으로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막상 상황이 역전되어 제가 남고, 남편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을 하니까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했던 행동이 '이혼하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됀 거죠.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 '그래도 난 고양이를 부탁한다. 그동안 미안했다' 등의 전형적인 이혼을 결심한 사람의 레퍼토리를 남발하진 않았다고 자조 섞인 자위를 하긴 하지만...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제 친정 엄마가 했던 얘기들, 친한 친구들, 남편과 했던 얘기들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쩌면 저의 착각이었나 봐요. 정말 누군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는 당사자의 느낌, 감정,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해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이해심 넓은 마음을 가진 것인지 알게 되었답니다. 이 시점에서도 아직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나, 그래도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하는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니 말입니다. 자기 합리화와 변명은 제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해결이 될 것 같아요. 가끔은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아는 게 더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의 모든 불화는 우리가 스스로를 잘 몰라서, 대부분이 사람들이 스스로는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 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이는 국제커플이라서 경험하는 특별함이 아닌, 모든 커플들이 겪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이렇게 지난날을 회상하면 저를 돌아봅니다. 


역지사지가 안돼서 미안해. 



#역지사지 #국제커플 #에콰도르 #부부싸움 #이혼협박 #니자신을알라 #에콰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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