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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Jan 18. 2022

엄마는 늙어가는 중

저번 주 토요일 새벽이었다.

전날 술을 신나게 마시고 밀크시슬 두 알을 털어 넣고, 새벽에 일어나 자는 아이를 깨워 스키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11시에 예약한 아이의 스키강습을 위해, 화장실이 보일 때마다 차를 세워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내고 열심히 강원도로 향하고 있었다.


막히는 도로를 지나 휴게소에 도착해 우동을 먹을 때였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어젯밤에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손목이 부러졌대. 엄마가 너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도 지금 용평에 있어서 늦을 것 같아서 연락했어. 너 집이면 빨리 엄마 좀 케어해 줘. 종인이도 서핑가서 집에 없대."


나는 너무나 놀라서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내 전화를 받은 엄마의 첫마디는 '아빠는 왜 너한테 전화를 했대.'였다. 엄마는 차분히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괜찮아. 어제 응급실 가서 깁스도 했고, 다행히 왼쪽 손만 다쳐서 오른손은 쓸 수 있어. 너 일정대로 스키 타러 가."

"아니, 어떻게 내가 놀러 가. 집에 아무도 없는데..."

"진짜 괜찮아. 너랑 동아랑 오면 내가 힘드니까 그냥 나 쉬게 너희 놀러 가."


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 했다.

집에 가면 늘 엄마는 나와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느라 진이 빠졌으니까.

아이에게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내 딸은 새침하게 대답했다.

"할머니 말이 맞을 수 있어. 할머니 쉬게 우리는 스키장으로 가자."

  

그래, 그럼 스키를 타러 가자고 결정하고 우동을 먹으려고 했다.

그렇게 잘 먹던 내가 면 한올을 넘길 수 없었다. 국물을 조금 마시고, 아이에게 얘기했다.

"엄마가 할머니가 걱정돼서 도저히 안되겠어. 할머니한테 그냥 가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 엄마 집으로 갔다.

늘 그랬듯,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엄마는 도어록 위아래 모든 열쇠를 잠가놓았다. 전화를 몇 번이나 해서 겨우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엄마는 겸연쩍은 듯,

"어젯밤에 좀 무서워서...."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깁스를 한 팔에는 옷을 입을 수 없어, 옷의 한쪽 팔이 덜렁거렸다.

가족 모두가 여행을 간 날, 혼자 샤워를 하고 영화를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미끄러졌다고 했다.

모두 여행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전화도 않고 금요일 밤에 혼자 119를 불러 옷을 주섬주섬 입고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고 했다.


엄마는 그 며칠 사이 살이 더 빠져있는 듯했고, 더 늙어 보였다.

한쪽 손밖에 쓸 수 없던 엄마는 약봉지를 뜯을 수도 없었고, 밥을 해 먹을 수도 없었고, 설거지를 할 수도 없었다.

이틀 동안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요리를 했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내일 입원을 할 엄마의 머리를 감겨주고, 검버섯이 핀 엄마의 손에 크림을 발라주었다.

우리는 심심해서 엄마의 젊었던 시절과 나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았다.

그 시절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10년은 어렸고 젊었고 예뻤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젊음을 먹고 컸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가 한번 들어가면 나갈 수 없어, 엄마는 혼자 입원실에 들어갔다.

처음 수술을 해보는 엄마는 지금 너무 외롭고 무서울 것 같은데, 나는 늦은 시간이어서 전화를 할 수도 없고 보러 갈 수도 없다.


언젠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도, 만질 수도 없는 날이 다가오는 것 같아 나는 오늘 계속 눈물이 났다.

어릴 적 나의 전부였던 엄마가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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