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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헌 Oct 09. 2017

9월 스톡홀름 - 스티그 라르손과 밀레니엄

① 쇠데르말름(Södermalm)

스웨덴은 처음이다. 스톡홀름 어느 서점이든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엔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Millennium(2005). 한 권엔 주인공 리스베트의 용 문신이, 다른 한 권엔 노려보는 얼굴이 커다랗게 박혀 있다. 미카엘은 할리우드판이, 리스베트는 스웨덴판이 더 어울린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지난해 밀레니엄 4부가 출간됐다. 죽은 원작가 대신 다른 작가가 썼다.


뒤늦게 밀레니엄에 빠졌다. 대니얼 크레이그 주연의 할리우드판 영화부터 스웨덴판,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까지 스톡홀름에서 돌아온 후 스티그 이름이 붙은 건 다 봤다. (스톡홀름 신드롬 ㅠㅜ) 스웨덴 하면 이케아, 즐라탄, 백야밖에 몰랐는데 직접 가보니 어느 곳에든 스티그 라르손이 있었다.


2004년 스티그는 초고 2000페이지를 탈고한 후 심장마비로 죽었다. 밀레니엄은 그의 처녀작이자 유작이다. 이 책은 지금껏 9000만부가 팔렸다. 그 인세는 대부분 스티그가 의절한 부친과 동생에게 돌아간다. 스티그에겐 32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에바 가브리엘손이 있었지만, 그녀가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스티그가 척진 두 부자가 모든 걸 차지했다. 스티그는 스웨덴을 무슨 고담시티처럼 그려놨는데, 그와 에바는 현실도 소설처럼 살았다.  


에바는 스티그의 사후에 책을 냈다. 에세이 '스티그와 나'라는 회고록이다. 책에서 그녀는 그가 매일 카페에서 아침을 해결했다며, 낭비벽이 심했다고 적었다. 책장이 반쯤이 넘어갔을 때부터 라르손 부자에 대한 욕이 한번 두번 늘어난다. 스티그의 아버지에게, 스티그의 동생에게.  


여름이면 목선을 타고 스톡홀름 군도를 유람했다는 스티그와 에바


밀레니엄을 집필한 카페 Mellqvists Kaffebar


스티그는 카페 Mellqvists Kaffebar에서 밀레니엄을 썼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패소 직후 뭉갠 얼굴로 커피를 들이켜는 카페도 이곳이다. 밀레니엄 투어라는 패키지 관광 코스에도 포함돼 있다.


매장 앞에 놓인 이케아 간이 테이블부터 화장실 맞은편 쪽테이블까지 빈자리가 한 곳도 없었다. 내가 방문한 오후 2시, 열개 남짓한 자리엔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메뉴가 올려져 있다. 까네불레(시나몬롤)는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먹고나면 입안이 텁텁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자꾸 생각난다.(한국 이케아의 광명과 고양점에서 종종 사먹었는데, 언젠가부터 안 판다. ㅠㅜ)


Mellqvists Kaffebar


(3주 전 일을 떠올리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 카페까지 30분은 족히 걸렸다. 그리 길지 않은 노선인데 섬 3개를 지났다. '통나무로 섬을 이은 동네'라는 이름처럼 몇 정류장 지나면 바다, 섬, 다리다. 9월 중순, 스톡홀름의 오후는 10월 말 서울의 날씨를 닮았다. 낮에는 반팔, 밤에는 외투를 걸쳐야 하는 시원 선선한 기온이다. 야구장 만한 공원엔 요가매트를 깐 무리와 탁구 시합이 한창인 아이들이 보였다. 카페를 나와 한참 걸었다. 두 손 무겁게 든 꾸러미의 불편함마저 즐거웠던 스톡홀름 도착 이튿날.)


밀레니엄의 본무대 쇠데르말름


쇠데르말름(Södermalm)은 스티그의 실제 거주지이자, 소설 속 밀레니엄 편집국의 소재지다. 자갈을 잔뜩 심어놓은 오르막엔 누런 외벽의 옛 건물이 줄지어 있는데, 언젠가 사진으로 본 리스본 시가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밀레니엄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주무대로 나온다.  


북단의 전망대에 오르면 구시가지 감라스탄, 스톡홀름시청 등 랜드마크로 불리는 명소 곳곳이 내려다보인다. 일본 유학생으로 보이는 무리에 섞여 아이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바로 아래 슬루센역 광장에는 청어버거를 파는 노점이 있다. 비린대다 가시가 빽빽한 청어를 퍽퍽한 빵 안에 넣어 먹는다. 이틀 연속 찾았더니 주인이 알아본다. "Hej."


Nystekt(갓 튀긴) Strömming(발트해산 청어)


퇴근 시간 쇠데르말름에는 사람이 반 자전거가 반이다. 어린이 시트를 장착한 MTB부터 짐칸이 딸린 삼륜 자전거까지 다양하다. 우비에 방수가방까지 갖춘 바이크족이 줄지어 가파른 오르막을 넘는다. 치마에 정장을 입고도 엄청 잘 탄다. 저 많은 무리를 보고 있으면 스웨덴의 물가를 감안해도 편도 4000원이 넘는 버스비는 비싼 게 맞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톡홀름의 밤과 스칸디나비아 느와르


밤과 낮, 스톡홀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오후 6시 이후 행인들은 건물 안으로 숨어든다. 가로등의 조도는 낮고 버스는 빽빽한 수풀 사이를 가로지른다. 도착 첫 날 어둠이 깔린 시각 체크인했다. 호텔 맞은편 새카만 공터는 웜홀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오전 배구 경기가 한창인 밤섬 만한 잔디밭을 보기 전까진.


TV에서 보던 복지의 나라 스웨덴은 반쪽짜리 낮의 이미지였다. 승객 한명 한명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버스 기사 아저씨와 느긋하게 피카를 즐기는 스웨디시는 해질녘 사라진다. 꼭꼭 닫은 철문 안에서 저마다 스칸디나비아 느와르 한 권씩을 품고 있는 게 밤의 스톡홀름 이미지다. 미드 덱스터의 마이애미 밤거리를 떠올리면 될 듯. 데이빗 핀처의 할리우드판 밀레니엄을 보니 예상대로 스톡홀름의 밤을 돋보이게 연출했다. 전선에 매달린 가로등이 흔들리는 스산한 거리와 창문에 갇힌 온기들.


해질녘 전망대 Gondolen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감라스탄. 발트해와 빽빽한 녹음이 내뿜는 생기는 어둠이 깔리면서 사라진다.
모노클 트래블 가이드 스톡홀름편에 소개된 쇠데르말름 펍 Omnipollos Hatt
Omnipollos Hatt
Monteliusvagen /사진=NYTimes
스톡홀름 카약 투어 /사진=visitstockholm.com
쇠데르말름에서 바라본 스톡홀름시청사 /사진=visitstockhol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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