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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Sep 11. 2024

“좋은 이웃을 만나는 건 복이에요“

후암동 빌라 사람들-5

  워킹맘이 가장 많이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다.

  세상의 모든 일하는 엄마는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 아프면 지방의 부모님을 긴급 호출하거나 회사 눈칫밥을 먹으면서 재택근무하던 시기에도 매일 전투를 치렀지만, 워킹맘의 아이가 아픈 문제는 시간마저 해결해주지 못하는 듯하다.

  율이가 초등 3학년이 되어 이제는 감기 정도에 걸려서 결석하는 날이어도 혼자서 집에 있게 됐다.

  하지만 지난주의 감기는 지금까지와 다른 강도였다. 잦은 기침과 열은 약국 약으로도 버텼지만 하루는 연달아 코피가 멈추질 않았다.

  온갖 방법을 써도 지혈이 안되면서 밤새 인터넷을 검색해 혈액검사를 받아보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 달 전에 새로운 상관이 부임하며 이런저런 업무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 도저히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점심시간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 율이를 데리고 혈액검사가 가능한 동네 병원에 갔다.


  “어머니, 혈액검사는 받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아이가 많이 힘들어할 거예요. 어머니가 많이 바쁘셨어요? 얼굴도 수척해지셨고.”

  “요즘 회사 일이 힘들어서 하루에 세 시간도 못 잤어요. 오늘도 점심시간에 겨우 빠져나왔어요. 원장님.”

  “남편은 왜 안 도와주세요!”


  평소에도 환자나 보호자와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해주시는 원장님에게서 작은 위로를 받고 나니 마음이 차츰 안정을 찾았다.


  대화 도중 위층에 사는 임대인 이모가 이곳 병원의 단골 환자이신 게 생각나 원장님께 말을 전했다.


  “김ㅇㅇ님 아시죠? 최근에 새 빌라로 이사했는데 저희 건물 임대인이세요. 원장님께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네, 너무 잘 알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건 복이에요. 복 받으셨네요.”

  “이모께서 율이 아픈 동안 집에 와 죽도 끓여주시고 미역국도 해주셔서 제가 마음 놓고 출근했어요.“


  새 집으로 이사한 지 3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모에게서 받은 온정에 익숙해져 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모가 율이의 병간호를 해준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옛날에야 그런 일이 흔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웃에게 도움을 받는 건 그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은 율이 솔이를 픽업해 주시는 대학생 선생님께서 율이의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수업을 미뤄달라고 요청하셔서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주일의 감기 전쟁을 치르고 등교를 시작했는데, 결석 신고서에 의사 의견서를 첨부해야 하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병원 진료시간이 6시까지여서 전화로 요청하니 5시 45분 안에 내원해야 발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시 눈치를 무릅쓰고 조퇴해 택시로 달려서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5시 43분.


  “원장님이 오늘따라 2분 일찍 퇴근하셨네요. 다음에 다시 오세요.”


  정말 이런 순간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1분도 채 안된 시간 전에 퇴근한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부탁해 줄 수는 없었던 걸까.

  내일은 의견서를 미리 작성해 놓을 테니 같은 시간에 다시 오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의견서를 제출하지 못해서 다음 날 담임 선생님에게 또 안 좋은 말을 듣고 나니 무기력함의 끝을 느꼈다.

  ‘온 세상이 다 내가 망하기를 바라고 있어.’


  다음날에 5층 이모를 만나 회사에서 받은 추석 선물을 나눠드렸다가 다시 뜻밖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노향씨,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꼭 말해주세요. 왜 도움받을 생각을 안 했어요. 율이 주민번호를 알려주세요. 내일은 내가 가서 받아올게요.”




  마흔을 넘어 많은 경험을 하며 세상과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했었지만 아닐 때가 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도움은 감사해도 정중히 사양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받은 친절은 반드시 답례해야 하는 게 나의 사회를 살아가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겪어보니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던 기준이나 가치관도 때로는 틀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삶에는 버틸 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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