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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Sep 22. 2024

부자로 보일 것인가, 부자로 살 것인가

후암동 빌라 사람들-6

  “엄마, 오바마 할머니 같은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돈을 많이 벌면 부자가 되지만 부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누군가에겐 우리도 부자로 보일 수 있고 가난해 보일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오바마 이모가 부자라고 생각했어?”



  “오바마 할머니와 할아버진 밥을 우아하고 멋지게 먹어. 저번에 할머니가 나랑 솔이를 브런치에 초대하셨잖아. 엄마 아빠랑 가본 호텔 조식 같았어. 정말 예쁜 그릇에 음식이 담겨 있고. 할머닌 평소에도 매일 밥을 이렇게 드신다고 했어. 역시 부자는 달라.“



  세대를 넘어 모든 이가 돈에만 혈안이 된듯한 자본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녀 경제교육과 가치관 정립은 많은 부모에게 고민이자 숙제일 것이다.

  한때는 “돈이 많으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지만 불편하지 않을 만큼 필요하고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의 틀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달라졌다.

  돈이 무한대로 있다고 해서 성공과 행복의 규모가 커지는 건 아니겠지만,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미래의 가능성마저 미리 제한하고 규정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소신과 아집, 부자와 가난… 이와 같은 것들의 차이는 늘 종이 한 장의 무게보다 작다.

  인생을 인생답게 살아가기 위해 돈은 가장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만을 좇고 돈을 1순위로 두는 삶을 잘 살았다고 평가하지 않는 이유다.



  부의 계급을 가늠할 수 있는 의식주의 식과 주는 생존과 안전을 위한 기본 요소이다. 의는 생존과는 연결되지 않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다른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편리하며 멋을 내는 옷은 한편으론 사회적 위치와 관계를 나타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율이 솔이를 낳고 나서 수년동안 새 옷을 사지 않아 출근할 때는 늘어난 남편 티셔츠를 입고 다닌 적도 있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데 외모에 신경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한 번은 여성이던 회사 대표님에게서 “직급과 자리에 어울리는 옷차림을 해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때는 겉모양보다 내면과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자기 위안을 하며 그런 말을 흘려보냈었다.

  내 나이가 당시에 30대에서 지금은 40대가 되고 아이들을 더 키워보니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는 살면서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다.

  예쁘고 화려한 옷은 지금도 입지 못하고 있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옷, 장소나 만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옷은 에티켓을 넘어 수준과 품위에 관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명품이나 고가 브랜드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은 맞벌이 도시 생활자에게 명품 의류나 가방은 많은 것과 맞바꿔야 하는 가치다.



  한 번은 오바마 이모가 자기의 친구 중 한 명이 흔히 짝퉁이라고 부르는 모조 명품을 즐겨 구매해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남편 직업이 사립대 교수이고 친정도 부유해 짝퉁을 살 이유가 없는데도, 단지 진짜와 똑같아 보이고 사람들이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저가 모조품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짝퉁을 만드는 건 불법이어도 사는 건 불법이 아니니까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짝퉁 소비는 비윤리의 문제가 아닌가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유지되는 거잖아요. 남에게 보이려 짝퉁을 입는 건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가 맞는 건지 나는 이해되지 않아요.“



  이모의 말을 듣고 나서 머릿속에 흐리게 있던 생각들이 보다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옷이든, 밥이든, 집이든, 소비 선택의 가치를 정하는 기준은 타인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이 되어야 한다.

  이모는 명품을 즐겨 사진 않지만 집에서도 언제든 손님을 맞았을 때 부자연스럽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 율이 솔이를 초대하신 날에 호텔 레스토랑처럼 식탁을 꾸며놓은 건 손님을 위한 정성도 있지만, 평소 식습관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식사할 때는 설거지를 줄이려고 공동 그릇에 넣어 먹는데, 오바마 이모는 개인 접시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다.

  고가의 렌트비를 내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은 내 가족의 행복이 목적이어야 한다. 회사 임원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대표님께서 생각한 것보다 몇 배나 되는 축의금을 주시면서 봉투에 이런 글을 쓰셨다.



  “좋은 보금자리는 행복한 인생의 출발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인생의 새 출발에 성공한 것일까. 이 집에서 살아갈 미래의 날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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