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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알로에, 그리고 나

멕시코 캄페체에서 배운 느림의 리듬

by Saul

나는 아내와 캐나다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 두 사람 모두 해외여행을 좋아했고, 언젠가 외국에서 살아보자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렸던 외국은 번화한 대도시, 화려한 빌딩 숲과 잘 정비된 거리였다.


그러나 현실이 된 외국은 멕시코의 한적한 시골, 그것도 덥고 느린 도시 캄페체였다.


이 당시 첫째 아들은 11살, 둘째는 4살이었고 이 어린 아이들이 그 먼 거리를 날아서 이 더운 나라에 도착했다.

IMG_20220320_144923.jpg 또한 2022년은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을 때라 준비할 것이 많았다. 마스크를 쓰고 피곤에 지쳐 공항에서 잠든 아이들

우리 가족에 캄페체에 온 이유는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당시 본사가 투자한 알로에 농장과 새로 지은 공장이 있는 이곳에서 나는 '우리 사업의 심장'인 알로에를 살피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른채 내 결정을 믿고 가족들은 많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IMG_20220325_133333 (1).jpg 이 한 장의 알로에 농장 사진을 얻기 위해 흘린 땀과 시간을 생각하면, 알로에 원료의 귀함이 절로 실감난다.

특히 아내는 처음에 너무 힘들어서 눈물로 밤을 새운 날이 많았고, 아이들도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나는 회사에서 통역을 구해주었지만 한국어 통역이 아닌 영어와 스페인어를 쓰는 통역을 구했다. 이곳에서

한국어 통역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통역하는 친구가 제법 똑똑해서 내가 하는 서툰 영어에도 찰떡같이 잘 알아들어서 좋았다. 하지만 퇴근 이후에도 모든 사사로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통역에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언어는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설픈 스페인어 한마디에 서로 웃음을 터뜨리고, 사람들과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우리 가족들은 그 작은 교감들을 모아 캄페체라는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상에서 체험한 캄페체의 느림과 여유는 알로에를 키우는 데도 큰 힘이 되었다. 알로에는 정말 강한 식물이다. 작은 상처도 스스로 치유하는 알로에의 회복력을 보면서 캄페체에서 경험한 어려움도 치유받는 듯했다. 바쁜 서울에서 온 우리 가족들은 캄페체에서 새로운 삶의 리듬을 배웠다. 금요일 저녁 고된 날들의 끝자락에 아내와 함께 마시는 멕시코 맥주 한 모금과 타코 한 입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고, 이런 소소한 여유와 행복은 이국의 땅에서 고생하는 우리 가족에게 주는 캄페체만의 비밀스러운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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