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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1.길 위의 밤...데이빗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다시 밤이다.

낮의 시간은 알수 없는 흥분과 모험으로 가득하지만 밤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모르겠다.

맨발로 종일 차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구걸해 모은 돈은 고작 45루피. 밥 한끼니와 본드 한 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배가 고프다. 공기는 점점 더 차갑게 가라앉고 ,이제 곧 겨울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더 이상 아무도 강물에서 수영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저 꼴통같은 짤레 녀석 조차도...

거리에서 보내는 일곱 번째 밤. 길 위의 시간은 화장터에서 생활할 때보다 곱절은 더 빠르게 흐른다.

하지만 밤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 진다. 온 몸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가고 아침이면 구석구석이 쑤셔온다. 본드가 필요하다.


(2007년,뿌자,4세)

                                     

낮에 엘레스가 다녀갔다.

뿌자가 나를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엘레스는 이곳의 생활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자기도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떠나 이리로 오고 싶다고 말했다.

주먹으로 녀석의 얼굴을 갈기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뿌자를 울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뿌자는 바람같다. 뿌자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디아 꽃잎 같다.

데이빗은 그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술에 취해 사원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엄마는 더 이상 뿌자를 돌볼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머리는 술로 점점 더 망가져가고 자꾸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고 다닌다.

어느날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누군데 자꾸 내 주위를 어슬렁 거리냐’고..


(술에 취해 데이빗을 때리는 엄마)


맨발로 차들 사이를 뛰어다니다 달려오는 차에 부딪힌 발 뒤꿈치가 쑤셔온다.

바를 약이 없어서 치약을 구해 발랐는데 바른 자리가 칼로 쑤셔 대는 것 같다. 본드에 취해 있을 때면 내 몸은 차들 사이로 날아가는 미사일 같다.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어떨 땐 웃음이 터져 나와 깔깔거리며 차창을 두드리다 거친 욕설과 함께 얼굴에 침을 맞은 적도 있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나에게 도요타를 타고 가는 아저씨가 말했다.

더러우니 저리 꺼지라고 ...

목욕을 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며 강물은 점점 더  차가워졌으니 아마도 한 달은 더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물속에 뛰어들어 몸을 씻을 수 있을까?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검은 물속에...

지금보다 백배는 더 차가울 것이다.

사람들은 겨울 강물의 그 차가운 감각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토록 더러워져 버린 걸까?



(파슈파티나트 사원근처 고살라에서 본드에 취해 돌아다니는 아이들)



내 영혼도 지금의 내 모습처럼 더러워져 있을까?

하긴 내 모습을 기억하기도 힘들다. 거울이 없으니까, 거울이 걸릴 집도 없으니까.

지나가는  차들의 차창에 내 모습이 비치지만 차마 내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하겠다.

그 얼굴은 이미 열 한 살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얼굴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몇 시일까? 지나가는 취객들이 내가 덮고 자는 거적을 발로 걷어찬다.

하필 걷어 차인 곳은 낮에 다친 발 뒤꿈치...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를 깨물고 버텼다.

소리를 지르면 힘이 빠질 때 까지 걷어차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본드가 필요하다. 길 위의 밤은 한없이 길기 때문에,

잠은 돌아갈 수 없는 집처럼 더 멀어져 버리기 때문에...생각을 멈추어야한다.

술로 망가진 엄마의 뇌처럼 나의 머리도 본드로 점점 더 녹아내릴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본드가 필요하다.

취해야 잠이 들 수 있을 테니, 꿈꿀 수 있을 테니...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유산...머리를 망가뜨리는 것.

생각을 멈추어야한다.


열두살까지만 살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제 몇달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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