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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루가 Mar 31. 2016

#6. 차가운 물

파슈파티나트 화장터 아이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


‘이제 수영을 하기에는 물이 너무 차가울 텐데 괜찮겠니?’


며칠 제법 많은 비가 내려 강에서 일을 하지 못한 엘레스를 만나러 가는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아침이다. 비가 개인 9월 초입의 아침 공기가 제법 서늘하게 느껴진다. 오후가 되면 강한 카트만두의 햇살로 공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겠지만 히말라야 산맥으로부터 흐르는 바그마띠 강물은 한여름의 물 온도와는 달리 제법 차가워져 있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손 떨리게 비싼 입장권을 끊고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들어갔다. 

엘레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국의 미스(Miss:이곳에서는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성인 여자는 미스라고 호칭한다. 미시즈 Mrs인 나 또한 네팔에서 부여받은 미스라는 호칭은 언제나 약간의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선사한다.)인 나는 1000루피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2007년도 촬영 때만 해도 사원 내부의 ‘죽음을 기다리는 집’(호스피스 병원) 원장 선생님의 배려와 사원 주민들의 도움으로 입장료 없이 사방으로 뚫려있는 개구멍으로 내 집 드나들듯이 드나들었는데 지나온 시간만큼이나 상황은 많이 변해있었다.

1000루피라는 액수는 10불, 우리 돈으로는 만원이 조금 넘는 액수이고 한 달 월급이 만 루피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네팔 현실에서 무리하게 올린 금액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그 돈이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쓰이거나 사원의 보수공사에 쓰이는 것도 아닌데...

입장료를 배짱 좋게 올 초보다 두 배나 올려 네팔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가장 비싼 입장료를 받는 장소가 되었으니 비수기라는 이유만이 아니라도 사람이 줄어든 이유가 된 듯했다. 

입장료를 올리면서 뚫려있는 모든 통로들 마다 경찰들이 살벌하게 지키고 있어서 드나들 때마다 수시로 입장권 소지 여부를 검사하고 아이들이 수영하는 것도 근래 들어 단속을 심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엘레스는 모처럼 장마가 끝나 수영으로 동전을 주울 요량으로 일찌감치 나와 경찰이 사라지기를 어슬렁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물이 불어나 물살은 거세고 흙탕물이 된 강물 속은 더럽기만 한데 녀석은 물안경이나 다른 도구도 없이 잠수해서 동전과 구슬 팔찌 같은 것들을 주워 갖고 나왔다.




아이가 주로 하는 일은 시신을 화장할 때 망자를 더 좋은 곳으로 가라는 의미로 입에 물리는 노잣돈이 재와 함께 강물 위에 뿌려지면 강바닥에 가라앉은 동전을 자석 낚시나 직접 헤엄쳐서 손으로 줍는 일이다. 

또는 해외에서 일하다 급사한 노동자들을 싣고 날아온 관을 화장하기 전에 강물에 버리는데 그 관을 주워다 팔기도 한다. 떠내려 오는 관하나 만 낚아도 1000루피 정도를 받는다니 먼 타국에서 죽은 자를 싣고 온 관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역할도 한다. 





관을 건져 올리는 작업은 화장터에서 보낸 시기나 경력(?), 말하자면 어느 정도 '짬밥'이 되어야 할 수 있다. 각자의 구역과 역할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잘못 다른 영역을 침범했다가는 몰매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함부로 할 수 없던 일을 이제는 당당히 할 수 있는 걸 보니 6년이라는 시간이 엘레스의 몸만을 키운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커다란 나무 관을 강에서 건져내는 작업은 매우 힘들어서 보통 두 명에서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작업을 같이하는데 엘레스는 자기보다 두 살 많은 솜 바드르(19)와 두 살 어린 소남(15)과 함께 일을 하고 생활도 같이 하고 있었다. 

같이 헤엄을 쳐서 버는 돈은 하루에 100-200루피로 셋이 나누어 밥도 먹고 여유가 생길 때는 게임방도 간다고 했다. 

사실 엘레스처럼 두 아이들도 자신들의 나이가 19살, 15살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정확한 나이는 사실 파악이 불가능했다. 이 아이들도 출생 신고가 안 되어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신분증이 없다는 것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 그 어떤 안정적인 직업도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중 막내인 소남, 이 녀석 정말 15살이 맞는 걸까?  키는 겨우 150센티나 될까, 하는 짓도 아기 같은 데다 결정적으로 아직 빠질 이가 남아 있는지 동네 형들이 이를 뽑아주는 걸 보니 열 살이나 될 듯 싶은데 15살이라고 우기니 미스터리로 남길 수밖에.. 

내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담배도 피고 건들거리는 폼이 아주 걸작이다.




엘레스가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손바닥 안의 동전들을 소남에게 건네준다. 

뿌옇고 더러운 흙탕물 속에서 녀석은 어떤 감각으로 동전을 찾아 나오는지 볼수록 신기할 따름 이었다. 

물 한 방울만 눈에 튀어도 따가울 텐데 아니면 바로 눈병에 걸릴 만큼 시신을 태운 재와 장작 쓰레기가 한데 뒤섞여 엄청나게 더러운데...

녀석은 저 차가운 강물을 헤엄쳐 동전을 줍고 목욕을 하고 한여름엔 더위를 식히며 아이들과 함께 멱을 감고 논다. 어쩌면 엘레스의 세상은 흐르는 바그마티 강물과 화장터 주변이 전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헤엄을 쳤을까 녀석이 오들오들 떨며 물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빠르게 걸어가 숨어버린다. 소남이 경찰이 나타났음을 알려주어서 급히 몸을 숨기러 나온 것이었다. 

사원 위쪽 기둥 뒤에서 주섬주섬 벗어 두었던 옷을 입고 강물에서 주운  동전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본다. 65루피, 물가가 많이 올라 아이들이 자주 가는 단골 로컬 식당의 가장 저렴한 식사가 40루피 정도니 한 사람 식사비를 조금 넘긴 금액이다. 




입술이 파래져 떨고 있는 엘레스에게 내가 두르고 있던 스카프로 어깨를 감싸 줄 때 스치는 녀석의 팔에 온통 소름이 돋아있다. 검은 녀석의 피부는 미끄러지듯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따뜻한 내 손바닥으로 어깨를 꽉 잡아주자 녀석이 수줍게 웃는다. 

‘이제 아이가 아니구나!’ 싶어 조금 낯선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더 세게 손바닥으로 어깨를 마찰시켜 녀석을 좀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싫지 만은 않은지 멋쩍게 웃으면서 던지는 녀석의 한마디. 

“밥!”

녀석이 할 줄 아는 우리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밥’, 다른 하나는 ‘빵’이다. 

이 두 단어로 녀석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언제나 당당하게 요구했다. 

“밥!”이라는 외침 한마디에는 ‘차가운 물에서 수영해서 배고프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그래 밥 먹자, 실컷 먹자...’

로컬 식당에 들어서서 먼저 따뜻한 만두를 주문하더니 볶음밥, 쵸우 메인(볶음 국수), 음료수 두병, 만두 튀김 한 접시... 도대체 비쩍 마른 녀석의 몸 어디에 이 많은 음식들이 들어가는지 놀랍기만 하다. 먹어 둘 수 있을 때 넘치기 직전까지 먹어두자는 세 녀석이 먹어치운 음식 값이 600루피가 넘게 나왔으니  로컬 식당임을 감안했을 때 얼마나 많은 양을 먹었는지 거의 식신(食神)처럼 보인다.  

‘그래, 그래 실컷 먹어라. 코리안 미스가 있을 동안 너의 허기는 내가 책임지마!’

 엘레스 덕분에 신이 난 소남은 조그만 녀석이 음료수만 세병을 연속으로 마셔 댄다. 

내가 떠나고 나면 어찌 ‘밥’ 먹고 지낼지...? 이렇게 배부르게 식사할 수 있을 날은 또 언제가 될지...

녀석들의 먹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부른 동시에 왜 이렇게 나의 목구멍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엘레스는 여름에는 수영을 해서 동전을 모으거나 떠내려 오는 장작과 관을 주워 팔아 생활하고 겨울에는 시신을 따뜻하게 보내려고 화장 전에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담요나 모포를 주워다 팔아 생활한다고 했다. 하지만 겨울 벌이는 여름만 같지 않고 일정하지 않아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창(서민들이 마시는 싼 술)이나 본드 같은 걸 흡입해서 몸을 덥히거나 알딸딸하게 취한 상태에서 물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여름의 시간은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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