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바다의 전설, 바르셀로나 근교 시체스
푸른 바다의 전설이 녹아있다는 지중해 파도 앞에 달려와 서자, 저 수평선 너머에 있을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시계를 거꾸로 들여다보며 엄마의 시간을 세어보다 포기한다. 나는 여기 나의 시간을, 엄마는 거기 엄마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늘 바락바락 고집스레 내 멋대로 살다가 숨이 턱 막히는 순간에 놓일 때면 엄마 목소리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곤 했다. 이유 없이 불쑥 들이미는 딸의 전화였으나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부재중이지 않았다. 사는 게 왜 이리 녹녹지 않은가 싶은 날에, 세상에 내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날에, 사람 노릇 하며 사는 게 버거워 한숨이 깊어지는 날에 늘 나는 엄마가 필요했다. 그런 날들의 통화는 대체로 짧았고 미안했고 고마웠으며 벅찼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무심한 질문에는 늘 목구멍 가득 뜨거움이 먼저 차 올랐다. 별일 없냐 연거푸 묻는 엄마 표정에 괜찮다고 말하며 이미 진짜 괜찮아진 나를 발견했다. 엄마의 목소리는 내게 주사고 약이고 붕대였다. 아직 다이얼을 누르면 들을 수 있는 우리 엄마 목소리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위로였고 안도였으며 다시 잘 살아 낼 힘이었다.
긴 여행길에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다가 이 여행을 가장 많이 축복하고 축하하고 부러워하던 엄마의 들뜬 표정이 떠올랐다. 당신의 젊음과 건강이 마음만큼이지 않다는 것이 슬펐을 테고 꿈을 꾸는 것이 불가능했을 시절들이 원망스러웠을 테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날들이 애달프게 다가왔을 엄마는 슬프도록 매우 기쁘게 우리의 걸음을 축하해 주었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흐르는 지중해 바람을 맞자 엄마의 새파랗게 환한 웃음이 보고싶어졌다. 엄마 목소리만으로 늘 다 괜찮아지는 나처럼 엄마의 시간도 나의 존재로 인해 조금이라도 괜찮아 지길 새햐얗게 부서지는 파도 앞에 서서 간절히 기도했다.
입안에서 오물 거리는 것 만으로 목구멍이 따끔거리는 이름 엄마. 내 삶이 삐걱거리는 날들에 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우리 엄마. 바다를 닮은 엄마의 너른 마음이 이 푸른 시체스 해변가에 흩어진다.
2018 10_ 바르셀로나 옆마을 시체스 지중해 연안을 거닐던 그 어느 푸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