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나에게
삶의 결, 을 내게 처음 이야기해주던 사람이 있었다. 아직은 어린 소녀였던 시절, 나와 당신의 결이 닮아 공명을 내고 있다고 언젠가 우리가 아주 훗날 다시 만난다면 참 좋은 인연이 되리라 말하던 한참 어른 같았던 사람.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조차 너무 잘 알아들었지만 아직은 소녀였던 나는 마주 앉은 채 빤한 무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늘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예의로 적당한 시기에 찾아와 삶의 색깔과 결, 생의 온도와 습도 같은 묵직한 고민을 털어놓고는 돌아갔다. 연인도 친구도 남도 아닌 그가 말하던 삶의 결, 그 촉감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가고 있었으나 나는 마지막 안부인사를 거절하고 시절을 떠나왔다. 인연을 놓은 건 나였다. 그날 마지막 인사를 건넸더라면 어디에선가 한 번은 만나자는 약속을 남겼을 테지. 그러나 연을 놓은 우리는 살아있더라도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가 말하던 내 삶의 결은 여전하다. 앞뒤 없는 슬픔과 예측 불가능한 기쁨 언저리를 헤매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지향하지만 결국은 매우 차갑거나 뜨겁게 살아가는, 흐리다가 맑다가 외롭다가 슬프다가 기쁘다가 그러다 만들어진 부드럽고도 거친 결. 나는 종종 일상의 스쳐가는 풍경 가운데서 어슴푸레한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는 여전히 결을 따라 살아가는 나의 오늘을 쓰다듬는다. 당신은 여전한 내가 여전히 궁금할까.
2018 11 _ 스페인 붉은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금빛 노을을 마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