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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lyanna Apr 25. 2019

아바나, 너의 불편하고 서툰 오늘을 사랑해

길을 잃어야 나를 만날 수 있어

한 번도 가지 않은 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잘 모르는 길 몰라도 어찌할 수 없는 길. 이미 이 곳에 서 있으니 달리 방법은 없다. 이럴 땐 그냥 눈 앞에 나타나는 길 따라 아무렇게나 걷는다. 타인의 삶 속으로 허락 없이 불쑥 끼어든 미안함과 낯섦을 등에 업고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며 그들의 일상 곁을 거닌다. 이방인에게 던져지는 시선을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이 순간이야말로 여행이 건네는 선물 같다.


지도를 볼 수 없는 도시.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동네. 그저 어렴풋한 방향만 감각적으로 더듬으며 나아가야 하는 쿠바, 아바나 골목을 한참 서성였다. 문명이라 불리는 것들은 거리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자유롭게 연결되지 못하자 내게로 뻗은 모든 세상이 닫혔다. 습관처럼 열어보던 지도와 무한정보가 담긴 스마트하던 기기는 쓸모없게 되었다. 의존할 것 하나 없는 상황에 던져지자 철저한 고립 가운데 묘한 설렘이 몰려왔다.     


두 눈과 하나의 마음을 이정표 삼아 발끝이 향하는 곳으로 걷는다. 틀린 길도 아닌 길도 없고 누군가 걸었던 길 어떤 이가 걸어갈 길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아가는 길이 나의 아바나이고 너의 쿠바이며 우리의 여행이 되는 시간.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아바나 거리를 두 발로 하염없이 걸으며 만나고 마주치고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안았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흐르면 멈춰서 몸을 흔들고 가고 싶은 골목이 나타나면 주저 없이 기웃거렸다. 흥에 넘치는 쿠바노는 내도록 유쾌했고 분에 넘치는 친절은 사뿐했다. 그저 이 도시의 오늘을 느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세상과 단절된 도시가 주는 매력은 사랑스러웠다. 불편함이 주는 서툰 것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우리를 둘러쌌다. 정처 없이 아바나 골목에서 길을 잃고 잃어버린 길 끝에서 살사를 추며 지는 해를 맞이하던 붉은 시간. 욕심이 장식품 같던 빈 손 아바나, 너의 자유로움이 오래 지속되기를 길을 잃고 헤매는 오늘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2018 12_ 시간이 멈춘 도시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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