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사는 건 제법 큰일이다. 대학을 서울로 가든지 직장을 구하든지 아니면 결혼을 하든지 어떻게든 생계와 직결된 구실이 있어야 한다. 대학교는 지방에서 나오고 대학원이라는 핑계를 시작으로 서울에 정착한 나는 처음 1~4년간 이해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엄마가 매번 하던 말 중에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서울에 사니?’라는 말.
이 말과 일맥상통한 건지 모르겠는데 서울 사람 중 우스갯소리로 ‘나도 내려가서 살면 좋겠어, 서울은 너무 복잡해’라는 얘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꼭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던 거 같고 진심이 묻어 있었다. 항상 서울을 동경하며 다양한 색깔을 이해해주는 도시 분위기가 부러웠던 나는 ‘여기 사람들은 좀 튀어도 이해해주는데 뭐가 문제일까~’하다가 서울 생활 몇 년 해보니 ‘아- 여긴 이해해주는 거 만큼 내가 해줘야 하는 것도 많은 동네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무래도 20년 넘게 살던 고향과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 대도시, 서울과 지역의 차이점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서울 와서 만난 친구 중, 서울에서도 강남 대치 쪽에 산다는 친구가 되려 내게 회귀본능을 일깨워준 적이 있다. 굉장히 수수한 차림, 조금 자기만의 색깔이 돋보이는 차림으로 다니며 항상 강경하게 자기주장으로 일침을 가했던 친구였다. ‘본질’에서 어긋나면 나이가 많은 선배라 할지라도 지위 막론하고 할 말을 또박또박 다 했던 친구. 정말 논리적이라 어떤 이들은 피하기도 했던 녀석인데 어느 날, 나에게 책 추천을 한다며 ‘월든’을 이야기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꼭 읽어보라던 친구는 이 책에 자기가 하고픈 말이 다 들어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래서 궁금함에 사게 된 책이 ‘월든’이다.
월든이란 제목은 물론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작가 이름부터 자연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슨 내용인가 하고 보니 ‘월든’이라는 호수에서 작가가 홀로 살며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으며 생활을 영위해가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가진 게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모습을 표본샘플로 보여주고 욕심부리며 사는 현대인들이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인 책이랄까? 읽은 지 제법 돼서 정확하게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잔잔한 일상인 만큼 한 편으로는 지루할 수도 있는 책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소로가 전달하는 메시지 만큼은 명확하게 몸에 남은 기분이었다.
48page / 나는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믿음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외한 다른 것들에는 너무나도 지대한 관심을 쏟으면서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다.
75page / 예전에 내 책상 위에는 석회암 조각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아침마다 내 정신의 먼지도 아직 털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낼 생각을 하니 끔찍해져서 돌들을 창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어떻게 가구가 갖춰진 집을 소유하겠는가?
85page / 도대체 분업의 끝은 어디인가? 분업을 통해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물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생각을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98page / 국가들은 광기 어린 야심에 사로잡혀서 그들이 후손에게 물려주는 웅장한 석조물로 국가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지속시키려 한다. 그 정도의 노력을 국가의 품격을 연마하는 데 쓴다면 어떨까? 달에 닿을 정도로 높이 쌓아 올린 기념비보다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작은 능력이 더 기념할 만한 일 아닌가?
최근 모임 활동을 하다가 만난 서울 토박이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2009년도에 직장 일로 경주에서 한동안 살았다는 이 친구는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경주는 스타벅스가 없어’라고 하면 ‘에이~말도 안 돼’라는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된 거 먹으려면 불국사에서 경주 시내까지 운전해서 나와야 했고, 이 사실을 서울 사람들이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하니.. 요즘에서야 TV에도 많이 나오고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라 볼 때마다 ‘세상에..’ 스럽다는데, 경주가 고향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고향이 경주라고 하면 ‘너희 집은 기와집이니?’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었다.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실제로 기와집에 사는 내 친구들도 있었고, 어릴 때 나는 동생과 커다란 왕릉 주변 언덕에서 뒹굴뒹굴하며 놀곤 했었다. 도시 애들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다닐 때 우리는 커다란 호수인 보문단지 옆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학교에서 소풍도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왕릉으로 가곤 하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다가 요즘 핫플이라며 외지인들이 한 동네로 몰려드는 걸 보면 어색하면서도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아 이제 여기도 살만한 동네구나~' 싶다가도 고유의 경관이 사라졌다는 아쉬움도 든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고향으로 오고 싶은 본능이 들면서 도시와 고향 양쪽을 다 원하는 이중성에 놀라곤 한다.
월든이 했던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202 page / 젊은이들은 젊음의 패기는 간데없이 그저 남들처럼 번듯한 직업을 갖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행동은 대체로 그들이 나와 같은 처지에서는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 바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늙고 병들고 소심한 사람들은 대부분 병들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죽는 생각만 한다. 그들은 인생이 위험투성이라(인생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는가.) 여겼고 신중한 사람이라면 연락을 받는 즉시 의사가 언제라도 달려올 만한 곳에서 가장 안전하게 인생을 사는 방법을 심사숙고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언제라도 달려올 만한 곳 = '도시'라고 보면 될 거 같다. 내 삶의 터를 고를 때 편리함 때문에 도시, 안락함 때문에 자연이라 할 수 있는 지역 또는 고향으로의 복귀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상경한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지만 당장은 나도 도시에서 지내는 삶에 더 집중할 거 같다. 그래도 항상 내 고향 경주가 가진 고유의 풍경, 아래 같은 모습들은 마음에 품고 살 것이다.
메인 사진 : 광화문에서 본 건물, 서울 광화문역,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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