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May 23. 2022

단식원에 갔다.

너절하고 쓸데없는 세상 고민들이란,

 지난겨울 단식원에 갔다 왔다. 딸과 같이 갔는데 4박 5일간 3일 단식, 2일 보식이었다. 처음엔 몸무게 줄이는 것과 해독이 목적이었다. 평소 피부 알레르기가 심해서 고생이었기 때문이다. 단식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식욕을 참기 힘들었다. 그동안 내가 구박했던 수많은 음식들이 떠 올랐다. 이내 음식들을 '음식씨', '음식님', 급기야  '음식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음식분'을 먹지 않으니 몸 곳곳에서 부작용이 일어났다. 어지럽고 메스껍고. 그러자 주황색 소변이 나왔다. 찾아보니 독이 빠져나오는 증거라고 했다. 속이 후련했다.


보식하는 사람들이 먹는 식단을 흘낏 보게 되었다. 야채 위주의 음식들인데 당근, 양배추 등이었다. 그 음식들은 평소 보조 음식이지 메인음식이 아니었다. 그들을 접시에 담아 먹는데 그 모양과 빛깔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야채를 멀리하던 편식습관을 고치는 순간이었다.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배고픔'이라는 명제 앞에 깨지는 '고민'들이다. 체중 문제, 돈 문제, 인간관계 문제, 건강 문제, 직장과 적성에 관련된 문제 등등. 이들은 한 끼를 굶을때마다 하나씩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단전에서부터 '대체 그게 뭐라고'가 절로 나왔다.

 

 배고픔 앞에서는 어느 것도 문제 되지 않았다. 금식기도의 원리를 깨우친 기분이었다. 금식기도를 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되는 건 아니다. 문제가 작게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날뿐이다. 허기, 아니 죽음 앞에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사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지 않은가.


배 고픈 상황에선 고민도 사치였다. 시간이 더 지나면 배고픔도 사라지고 몸과 머리가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고 한다. 그 상태에선 명상도 쉬울 것이다. 평생 위에 가득가득 채우기만 했던 날들. 그 위를 비워내니 정신이 채워졌다.


 무슨 이유라도 좋다. 배고픔을 이겨본 사람은 뭐든 할 것 같다. 그만큼 어렵다. 단식 시간 동안 많은 고민들이 잘게 쪼개어졌다. 이제 나는 사람을 둘로 나눈다. '3일 이상 굶어본 사람'과 '안 굶어본 사람'으로. 3일 이상 굶어본 사람은 어떤 고민도 대수롭지 않게 다룰 수 있기에.


작가의 이전글 책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