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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Mar 30. 2016

모든 일하는 사람과 그의 일은 존중받아야 한다.

Treat employee with respect

외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가장 큰 환상 중 하나가, 속된 말로 '널널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요즘엔 해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실제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많이 알려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도 그렇게 물어보는 지인들이 많다.


한국 내에서도 직종, 직급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내 경험에서 봤을 때는 '근무' 자체는 해외가 더 힘들면 힘들지, 절대 덜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덜 힘들다는 것인가? 아니다. 내 생각엔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힘들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업무' + '내 소관이 아닌 업무' + '업무와 상관없는 잡일' 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외국 회사는 자유롭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 요구하는 소위 근태, 근무태도 (work ethics)에 대한 기준은 사실 굉장히 빡빡하다. 다만 철저히 근로 계약에 입각해서 요구되기 때문에 모든 직급에서 철저한 책임 주의이며, 대신에 책임을 벗어나는 일에서는 자유롭다. 그럼 야근이나 특근 없는 거야? - 당연히 있다. 그날 끝내야 하는 일, 특수한 시간대에만 해야 하는 일, 기본 근무 시간외에 추가 작업이 필요한 일등 등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 가령 은행들이 많은 시티(city) 구역엔 거래처와의 시차 때문에 저녁 늦게 일하는 사람들을 꽤 볼 수 있다. 밤늦게 도로 공사를 하는 기술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중요한 차이는 그 추가 근무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냐 같은 원론적인 것부터, 정말 그 근무가 필요하냐 같은 효율적인 것들에 있을 것이고, 우리 모두가 알 다 시피 사실은 우리나라 노동자가 불행한 이유는 후자에 있다.

 

극단적인 경우를 상상을 해보자 - 굳이 아침 일찍 출근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는데, 성실성을 보이려는 목적 등으로 일찍 출근한다. 다들 잠이 덜 깬 얼굴로 커피와 담배로 각성을 한다. 어제 퇴근에서 12시간이 안 지난 사람도 꽤 많다. 퇴근은 했지만 원하지 않는 회식 자리를 지키느라 심지어 집에 못 돌아간 사람도 있다. 당연히 일과가 시작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숨어서 졸거나 회사 밖으로 도피하여 쉬다가 온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하고 싶은데, 상사가 안 간다. 눈치를 보니 늦게 갈 것 같다. 에이 모르겠다. 밥이나 먹어야지. 저녁을 먹고 다시 들어와서 시간을 죽이다가 눈치껏 집에 간다. 당연히 집에 오면 늦은 밤. 취미고 여가고 없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나가려면 또 자야 한다. 여기에 애들을 키우는 맞벌이 가정이면... 너무 힘들고 슬픈 사연은 다른 곳에서도 너무 많으니 생략하자. 그래서 하루 12시간 이상 회사에 쓰는 사람도 찾기 어렵지 않다. 그 시간을 오롯이 일만 하는 경우도 흔하다.


초과 근무 시간에 대한 통계. 터키 사람들은 살 수 있는 걸까... 출처는 Forbes.


문화 차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현실과 먼 이상적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외국 회사라고 모든 일이 깔끔하고 정확하게 돌아가는 것만도 아니다. 피고용자 (employee)는 어디서나 힘들다. 정신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사라던지, 도대체 어디서 따로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되는 똑똑한 동료와의 경쟁, 아무리 가르쳐도 나를 무시하는 것 먀낭 끊임없이 사고 치는 부하라던지. 그런 건 다 비슷하다. 대신 확실한 차이는 원론적인 데에 있다. - 직장이라는 조직은 어떤 목적을 위해 최고의 생산성을, 직원들과의 계약을 통해서 얻어내는 곳이며, 그것이 시스템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켜지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본다.


쉽게 말해서, 외국에서 일반적인 윗사람의 입장은 이렇다; 계약에 정해진 근무 시간 이외의 근무는 해당 직원의 생산성을 저해하며 궁극적으로 조직의 이익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오히려 이미 증명된 충분한 시간 내에 주어진 업무를 못하는 직원은 능력이 부족한 직원이다. 아랫사람의 입장도 비슷하다; 주어진 일과를 정해진 시간 내에 다하면 내 의무는 다한 것이다. 계약 외의 내 시간은 보호받아야 하며 강요할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대신 근무 시간에 상대적으로 빡빡하다. 직원의 생산성과 성과 관리는 철저히 평가받으며 그에 따라 냉정히 대접받는다. 일과 시간에 개인적인 업무를 자주 하다가는 인사부 직원과 단란한 면담 시간을 갖게 된다. 시키는 일만 하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회의 등) 동기 부여가 안되었거나 능력이 부족한 직원으로 평가받아서 재계약과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일반적인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감히 어디가 낫네 어쩌네를 감히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성실함과 일 잘하는 것으로는 정말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점점 행복해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왜 그런 것일까 - 개인적으로 가장 큰 요인은 노동에 대한 존중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근로 행위는 정해진 계약에 따라 행해져야 하고, 특히 휴식에 대한 보장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근로 계약 외의 노동에 대해서는 합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피고용인의 양해와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한 보장된 휴식에 대해서는 철저히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 스타벅스에는 스태프가 쉴 수 있는 보통 Private라고 문패가 달려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아무리 바쁜 때라도 정해진 휴식 시간엔 스태프에게 누구도 일을 요구할 수 없다. 좁은 스타벅스의 경우엔 이런 공간이 부족해서 스태프가 고객과 같은 공간에서 휴식을 한다 - 유니폼을 입고. 바빠서 동료 직원들이 정신이 없어도 여간해선 안 도와준다, 아니 동료도 부를 생각이 거의 없다. 빨리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지 스타벅스에 점심시간에 가면 스태프 두어 명이 일을 다 하느라 고객 줄이 길게 늘어선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눈치가 보여서 못 앉아 있을 것 같은데, 아예 이어폰까지 끼고 본 척도 안 한다.



플리머스 (Plymouth)에 갔을 때다. 경비를 아끼려고 저가 버스로 유명한 메가버스 (Megabus)를 타고 갔다. 출발부터 꼬였다. 버스가 아직 도착 안 했단다. 30분 늦춰지겠어요. 쏘리. 다시 30분 뒤에, 한 시간 더 늦춰지겠어요. 베리 쏘리. 돌아올 때는 더 어이가 없었다. 버스가 두 시간 가까이 늦게 왔다! 여기서 더 황당한 일, - 개인적으론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 지를 몸소 알게 되었지만 - 도착한 기사님이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외쳤다.


"런던에서 차가 너무 막혀서 늦게 도착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안전) 규정상 모든 운전수는 정해진 시간의 운전 뒤에 꼭 휴식을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


그 말을 남기고 아저씨는 밥을 먹으러 간다고 사라졌다. 버스 문은 잠그고. 덕분에 터미널에서 더 기다리는데 기사 아저씨가 햄버거 등 식사를 사 오셨다. 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서 버스 안에서 드시고 빨리 가려나보다. 미안. 여긴 영국이야. 아저씨는 햄버거를 가지고 혼자 버스에 타시고 문을 닫았다. 밖에 몇십 명의 승객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리고 식사를 하시고 낮잠까지 잠깐 주무시고는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물론 나도 너무 그 상황은 황당 그 자체였다. 아무리 저가 버스라도! 버스를 놓칠까 봐 엄청 서둘러서 터미널로 왔는데! 결국 예정시간보다 세 시간 늦게 출발했다. 짜증과 화가 안 날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 진정하고 생각하니, 그 기사님이 자기 잘못으로 늦은 것도 아니고, 그 기사님의 휴식 시간은 법적으로 보장받은 것인데 승객들을 위해서 양보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 그래도 문이라도 열어주고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해주셨음 화가 덜 났을 듯요.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 문제에 대한 우리 나라와 외국의 시각 차이가 가장 심한 것은 아무래도 '휴가' 문제일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평균 공휴일이 우리나라는 굉장히 많은 상위권의 나라다; 2016년 우리나라는 핀란드와 비슷한 16일이고, 보통 복지로 부러워하는 덴마크/스웨덴보다 1주일 정도가 많다. 참고로 미국은 10일이고 잉글랜드는 8일이다 (최하위권). 그래서 영국에선 공휴일을 늘려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영국의 평균 유급 휴일은 28일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국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정당한 권리인 휴가를 자기 의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보스 나 내일부터 휴가 갈게요' 했다가는 '복권이라도 된 거냐'란 비아냥을 들을 것이다. 다만 조직의 생산성에 피해를 주지 않는, 조정되고 합의된 휴가는 누구도 반대하지도 않고 방해하지도 않는다 - 대학교 직원들은 쉬는 날엔 메일 계정을 아예 자동 회신으로 바꾸고 닫는다, 단 하루를 쉬더라도. 프리미어 리그 (Premier Leahue) 경기가 낮에도 하는 이유는 팬들이 경기 시간에 맞춰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 야구팬인 나는 6시 반에 하는 야구를 보기 위해서 몰래 도망치고는 했다. 유럽 사람들은 '미국인들처럼 일만 하는 영국인들'이라고 한다는데... 그럼 한국인은?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한국인들? 아니면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한국인들일까?


나라별 공휴일 숫자 비교, 몇년전 자료인듯. 출처는 wego.com


한 나라의 최고 인재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직업을 쫓아가는 현실은 참 슬픈 일이다. '저녁이 없는 삶'이 오히려 이상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모두의 노동에 대한 권리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가 없음은 명백하다. 우리의 인식부터 천천히 바꿔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식당에서 술집에서 재촉한 적은 없는지? 은행에서 짜증내 본 적은? 병원에서 기다림에 화를 낸 적은 없었을까? 빨리 확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자체는,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이 사회의 잘못된 단면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본질을 바로잡지 않는 대책은 일시적일 뿐이다. 먼저 주위의 일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


한때 나라의 생산성까지 저해시킬 정도로 노조가 강성이었던 영국이지만, 100년 전만 해도 노동자에 대한 학대와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가 심각하던, 노동에 대한 비인권적 인식이 만연하던 나라였다. 우리도 언젠가는 일하는 사람이 대우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고 변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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