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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Mar 31. 2016

숲의 도시, 런던

Green Space - benefits for London

영국 영공에 이르러서 비행기 창으로 내다보면, 넓은 녹지를 먼저 보게 된다. 흐린 날씨에 넓게 깔린 녹지, 어쩐지 상상하던 영국 같아서 설렌다. 히드로 (Heathrow) 공항은 서쪽에 위치하므로 보통 비행기는 런던시 상공을 지나간다. 그런데 런던은 손꼽히는 세계적 대도시인데, 생각보다 덜 답답해 보인다. 그 이유는 높은 건물이 적고,  무엇보다 녹지가 많기 때문일 게다.


런던의 녹지 비율은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약 47퍼센트가 녹지로 분류되며 인간을 포함한 약 13000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국립공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농담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런던시는 녹지 면적을 더 넓히기 위해 고심 중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라서 그래서인지, '공원은 이제 충분하니, 집이나 좀 지어라 이것들아!'란 말이 절로 나온다.


런던의 녹지를 보여주는 지도, 출처는 Gigl.org.uk


실제 도심 한복판에서도 자그마한 가든과 공원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하이드 파크 (Hyde Park), 리젠트 파크 (Regent Park), 세인트 제임스 파크 (St.James Park) 외에도 이름에는 park가 없지만 녹지인 러셀 스퀘어 (Russel Square), 링컨스 인 필드 (Lincoln's Inn Fields) 같은 곳도 있고, 세인트 폴 (Saint Pual) 대성당 같은 곳에는 으레 가든이 딸려 있어서 앉아서 쉴 수 있다. 도심 속 공원이지만 크기는 엄청나다. 하이드 파크나 리젠트 파크는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하이드 파크의 경우, 외곽 길을 따라 돌면 7.5km가 넘는다. 도심을 벗어난 곳에 있는 공원들은 더 크다. 말 그대로 광야 (heath)인 햄스테드 히쓰 (Hampstead Heath), 야생 사슴떼가 사는 리치몬드 파크 (Richmond Park).. 공원은 셀 수 없이 많다. 땅값이 미친 듯이 비싼 런던에서 이 많은 녹지가 가능한 이유는 대부분의 땅이 왕실 소유였거나, 여전히 왕실 소유라서 그렇다고 한다. 특수한 영국의 정치 구조가 공공 재산의 사유화를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니치 (Greenwich) 천문대가 있는 그리니치 공원, 각종 배편으로 템즈 (Thames) 강을 가로질러 가면 금방이다.


영국의 공원은 그냥 '녹색 공간' 그 자체다. 다른 유럽의 공원도 비슷하지만, 더 심하다. 드문드문 놓여있는 벤치와 길을 안내하는 지도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남은 공간은 사람과 동물이 채운다. 잔디를 뛰어다니는 청설모나 다람쥐, 유유히 연못을 누비는 오리와 백조들.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 조금만 큰 공원을 가도 정말 숲이 따로 없다. 영국 공원의 동물들은 사람을 경계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관광지로는 아주 유명하지 않은 홀랜드 파크 (Holland Park)에는 공작이 돌아다닌다 - 꼬리가 이쁜 그 새말이다. 그냥 사람 옆에 산책하고 다니다가 기분 좋으면 멋진 꼬리 깃털을 보여준다. 그냥 공원 주민 같다. 그런 '거주 동물'들은 오히려 먹을 것을 달라며 다가오는 경우가 더 많다 - 그러다 함부로 오리들에게 빵을 던져주면 몰려드는 오리 때로부터 큰 화를 당할 것이다 -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니, 어린이들도 동물들을 쉽게 대한다. 먹이도 주고 만져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동물 애호가가 된다.


백조들에게 밥을 주는 아이들. 이 사진 이후에 몰려드는 백조떼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잘 꾸미고 가꾸어 놓은 유럽식 정원과는 달리, 영국식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밸런스를 중시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뭔가 공원이 어수선하다.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숲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화원이 이쁘게 단장된 곳도 당연히 있습니다). 연못과 호수는 멀리서 보면 그림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동물 분비물이 둥둥 떠다니는, 우리가 말하는 X물이다. 더럽지만 그것마저도 자연스럽다. 그러면 그런 자연스러운 (바꿔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원에선 뭘 할까? 사람도  역시 그런 공원에선 자연의 일부가 된다.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아줌마들 (영국 아줌마들도 똑같다. 진짜 온갖 걸 다 가지고 와서 먹고 수다 떨면서 논다), 낮잠을 자는 아저씨들, 선탠을 하는 아가씨들, 공놀이 하는 아이들, 애완견과 산책하는 할아버지들, 이상한 체조(?)하는 이상한 사람들.... 그냥 각자 숲의 일부가 되어 시간을 보낸다.


역시 피크닉엔 먹는 것이 만국 공통인듯! 출처는 guardian.


시내에 이렇게 큰 공간이 있으니, 사람 모으기에 이보다 나을 수가 없다. 덕분에 공원 콘서트와 연극, 스포츠 경기 등의 문화 이벤트 공간으로도 잘 활용된다. 롤링 스톤스 (Rolling Stones)나 블러 (Blur)등의 락밴드 공연도 있었고, 2013년부터 열리고 있는 브리티쉬 섬머 타임 (British Summer Time) 같은 음악 페스티벌도 있다. 겨울에만 서는 하이드 파크의 윈터 원더 랜드 (Winter Wonderlnad) 놀이 공원도 유명하다.

 

Hyde Park에서 열리는 British Summer Time.


잔디가 잘 자라는 기후이지만, 관리를 안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녹지는 정기적으로 관리 회사가 와서 잔디를 깎고 나무를 손질한다.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가고 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도 더욱더 확장하려 한다니.. 회색 도시에서 온 사람의 한 명으로서 부럽다. 사실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서울을 포함한) 도시의 녹지 비율 자체가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분산되어 있지 않고 집중되어 있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 대도시에 살면서 녹지가 있는 곳으로 놀러 가려면 가서 즐길 시간의 몇 배를 길에 버려야 한다. 심지어 그렇게 도착한 공간들은 인파로 넘쳐난다. 그렇다고 없는 녹지를 도심에 갑자기 조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청계산 등산을 갔다가 줄을 서서 올라가던 생각이 난다. 한강 공원에 주차하려다 나가지도 빠지지도 못해본 경험은 한번쯤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강변의 재건축 제한에 관해서 서울시와 주민들의 마찰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개인의 사유 재산 권리에 대한 주장은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어떤 이들의 사유재산이 공공의 재산을 침해할 수 있다면 어떻게 완충해야 하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재개발과 재건축에 대한 강력한 억제에 관해선 반발과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도심 미관 유지등 공공의 목적이 명백하더라도, 부동산의 소유주가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할 권리도 명백하다. 하지만 누구의 소유도 아닌, 도시의 풍광을 즐길 권리마저도 사유 재산에 의해서 분배된다면... 참 씁쓸한 일이다. 개발에 따른 이익 추구도 좋지만, 공공 환경마저 독과점될 수도 있는 개발이 궁극적으로 사회에 이익이 될까?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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