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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 Mar 18. 2016

영국 음식이 그렇게 맛없다며?

British Cuisine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의 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영국(England)에서 요리라고 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것들이에요. 물안에 양배추를 넣어 놓은 것, 가죽처럼 될 때까지 익힌 고기, 맛있는 부분들을 벗겨낸 야채 같은 것들이죠."


인터넷 유머 단골 소재 중 하나가 영국 음식에 관한 것이다. 이건 한국에서만이 아니고, 영국 음식에 관한 조롱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 인기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1927년에 나온 소설이다. 옛날부터 영국인들조차도 자국 음식에 대한 자조와 조롱은 단골 농담 소재다. 유튜브, 인터넷에는 이에 관한 농담/괴담(?)이 정말 많다 (그 정어리 파이 인가하는 인터넷에 영국 요리라고 떠돌아다니는 것은 stargazy pie라고 Cornwall지방의 요리라고 들었는데, 이걸 아는 영국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도무지 맛있는 음식이 없어서 맛을 아는 영국인들은 다 멸종해버리고.. 그 뒤로는 요리가 발전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제대로 된 음식을 찾아서 전쟁을 하다 보니 영국 제국이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 어떤 것은 농담인 줄 알면서도 '어? 일리 있는데?' 하기도 한다.


종종 나에게도 정말 그렇게 맛이 없냐고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고... 우리 부모님들도 어디서 들으셨나 보다. '그렇게 맛이 없다는데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니??'


뭐 간단히 답하면... '맛없는 편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만큼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라고 하고 싶다.




맛없는 영국 음식에 관한 진지한 분석들도 많다. 며칠만 영국에 머물러도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쉽게 알 수 있다; 이 날씨에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까??? 실제로 식재료가 그렇게 다양한 것 같지는 않다 (수요가 없어서 유통이 안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분석은 급격한 산업화로 전통 조리법이 소실되고, 심각한 빈부 격차로 식사 문화 자체가 많이 상실되었다고도 한다. 비싼 물가에 음식에 많은 돈을 쓸 여유가 없어진 것도 한 요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영국 요리'라고 하는 것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British Food라고 광고하는 식당들은 수제 햄버거, 파스타나 스테이크,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을 판다, 영국식 아침 식사(English Breakfast)가 실하기로 그나마 평판이 좋지만, 그 양이 실한 것이지 그 내용은 (빵, 햄, 시리얼 등) 어느 나라에서나 먹는 것들이다. 피쉬 앤 칩스(Fish & Chips)가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산업혁명 시대에 이르러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싸게 끼니를 때우려고 많이들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즉 전통적인 '영국 음식'이라 하기엔 좀 이상하다.


그래서 영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인도 음식, 이탈리아 음식, 스페인 음식 등 '확실한 요리의 정체성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British Food라고 광고하는 식당은 안 가는 것이 좋다. 어이없는 맛에 더 어이없는 가격으로 화만 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펍에 가서 같은 음식을 먹으면 한결 나을 것이다 (분위기라도 나니까). 동아시안 음식도 너무 먹고 싶지 않다면 비추천이다. 중국집은 너무 기름지고, 한식은 뭔가 심심한데다 어색한 맛이고, 일식은 초밥이 연어 외엔 거의 없다 (당연히 모든 곳이 그렇진 않습니다).


여행자들은 런던 시내에서 피쉬 앤 칩스를 사 먹고, 거의 대부분은 욕을 하며 돈이 아까워서 먹는다 (사실 다 먹기는 힘들다. 너무 짜고 기름져서.) 레스토랑은 뭔가 거창해 보이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피한다 (미끼씨: 돈은 내가 내는데 왜 무서워하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내가 영어를 못해도 파는 사람이 돈 벌려면 알아들어야지.) 뭔가 만만해 보이는 패스트푸드를 먹고, 초저렴한 중국 음식 뷔페나 심지어 한식을 먹고는 말한다. '아 영국 음식 최악이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은 대체로 별로인 곳이 많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그리고 비싼(!) 곳을 가면 아주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Plymouth에 갔을 때, 유명하다는 곳에서 사 먹은 피쉬 앤 칩스는 아주 맛있었다.) 애초에 무엇보다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 자체를 여행의 재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중요한 목적인 사람들은 영국 외에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뭔가 변호하듯이 이야기가 되었는데, 가격에 비해 맛이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특히 레스토랑 같은 곳이 아닌,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들은 정말 별로다. 자연스럽게, 저 돈을 주고 사 먹느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지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실제로 많이들 싸서 다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식과 요리에 대한 관심 부족이 제일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실제 겪어보면 영국 사람들은 '먹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영국식 아침 식사는 관광객이나 먹는 것이다. 출근하기 바쁜데 그렇게 잘 차려먹는 사람 찾기 힘들다; 한국도 아침 식사 제대로 하는 사람 잘 없는 거랑 똑같지 뭐. 점심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식당은 비싸고 시간도 없다. Grab & Go 샌드위치/도시락 같은 걸로 때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감자칩 같은 과자로 해결하는 사람도 많다. 근처 공원이나 쉼터, 아예 그냥 길에서 먹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는 일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작업복이던 양복이던 그냥 아무 곳이나 앉아서 대강 먹는다. 바쁘면 일터로 돌아가면서 먹는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보면 상놈들이 따로 없다고 할 것 같다.


(사진 출처 : Daily Mail)


쉽게 찾을 수 있는 Pret A Manger, EAT, Geggs, ITSU, wasabi등과 TESCO나 Sainsbury's 등의 슈퍼마켓엔 점심을 사러 온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선택의 종류 (파는 곳이나 파는 음식이나)도 사실 거의 없다; 정말 음식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고 개발도 별로 안 하는 듯하다. 5,6 파운드로 대강 먹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놀거나 낮잠을 좀 자다가 일터로 돌아간다.


쉽게 찾을 수 있는 fast food 가게


퇴근은 5,6시 사이에 거의 다 하니, 특별히 약속이 없으면 저녁은 대부분 집으로 가서 먹는다. 또는 간단히 펍(pub)에서 한두 잔 하고 집에 간다. 수요가 없으니 회사 밀집 지역의 음식 파는 곳들도 보통 일찍 (6시~7시) 문을 닫는다.


그러면 집에 가서 저녁은 잘 먹느냐?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요리 재료를 사가는 사람보다, 전자레인지나 오븐에 데워먹는 냉장 음식인 레디 밀(Ready Meal)을 사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실 이 레디 밀이 맛이 꽤 괜찮다. 가격도 착하다. 비싼 것도 10파운드 이하인데, 간단한 카레나 파스타 같은 요리부터 제법 거창한 고기 요리나 빠에야(Paella) 같은 것도 있다. 유통 기한에 예민한 영국 사람들이라 자주 세일을 하는데, 반값, 심지어 1/4 가격에 팔 때도 있다. - 가난한 유학생이라 세일 가격이 붙어 있으면 번개같이 낚아챈다. (주로 경쟁자들이 아시안이라는 것이 슬프다) - 레디 밀은 수요가 워낙 많으니, 새로운 종류가 계속 개발되고 마케팅도 활발하다 (Marks & Spencer의 광고는 정말 찾아서 볼만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더 요리에 관심이 없어지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심지어 간단한 안주 거리 (nibbles)도 다 판다 - 과자에 치즈 한 장 올려놓은 것도 있다.


Ready Meal은 Marks & Spencer가 제일 맛난다. 진리임. 그냥 외우세요. 다수의 의견임다. 광고도 제일 멋짐. https://youtu.be/PZ4pctQMdg4


그렇다고 음식에 대한 관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런던이 뉴욕과 더불어 유명한 레스토랑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르 꼬르동 블루 (Le Cordon Bleu) 같은 유명한 요리 학교도 많고,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 같은 영국인 스타 요리사도 많다. 즉 제대로 된(decent) 식사 (dining)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높지만, 일상생활에서 매일 먹는 식사(meal)에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한다. 아니, 사실은 요리 자체를 잘 못하고 잘 몰라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실제로 TV에서 제일 많이 하는 방송은 요리 프로다. 우리나라도 소위 쿡방이 너무 많다고들 하는데, 여긴 더 많다. 가르치는 프로그램, 찾아다니는 프로그램, 서로 식사 초대하는 프로그램, 경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진짜 많다. 미끼씨 표현대로 - 요리하지도 않을 거면서 프로그램은 정말 더럽게 많다. 요리 실력은 - 나오는 게스트나 일반인을 보면 정말 처참한 수준이다. 나 같아도 저렇게 소질이 없으면 하기 싫겠다란 생각이 든다. 아마 인기가 있으니 저렇게 프로그램이 많을 텐데, 어쩌면 못하는 (또는 하고 싶지 않은) 요리를 대리 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먹방, Food Porn이란 말도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식재료와 그에 맞는 최적의 조리법, 건강과 영양까지 생각하는 식단까지. 그냥 먹는 행위 이상의 '음식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이 분명히 있다. 요즘의 한국에서는, 다들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음식 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과한 스트레스로 인한 식욕 저하와 경제적인 이유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실제로 영국은 맛없는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균형 잡히지 않은 식단에 따른 영양 부족과 성인병의 증가가 문제다. 점점 치솟는 의료재정 부담에 각종 세금 인상과 정책들이 집행되고 있지만, 건강의 필수 요소인 균형 잡힌 영양분의 섭취와 바른 식습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 같진 않다. 한국인의 영양 상태와 식습관이 닮아가는 것 같아서 우려가 된다. 노동 강도는 비교할 수도 없게 가혹한 한국인의 건강 상태가, 그나마 유지되어오던 식습관까지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바르지 못한 식습관을 가진 우리 부부에게 어머니가 자주 하시던 핀잔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래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 잘 챙겨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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