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 Mar 21. 2016

오늘 런던 하늘은 하루 종일 맑으면서 흐리고 비바람

Unpredicatable UK Weather

"마, 어디 거지 쉐리가... 돈 아껴서 우산 사는데라도 보태써라."


한국에서 친구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려고 하면, 친구들은 저런 말을 하며 대신 많이들 내줬다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나보다. 고맙다 친구들아! 은혜는 꼭 갚을께!)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보던 책들에선 영국 사람은 늘 우산을 들고 슈트를 입고 모자(hat)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영국은 비가 많이 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 온다'라고 하는 정도의 날씨는 오히려 드물다. 미용실 스프레이로 뿌리는 느낌이랄까? -스프레이 강도만 변하고. 그래도 우산을 안 쓰면 제법 옷이 젖기에 우산을 쓰고 싶지만..


영국에 몇년 살다 보니 전형적인 영국의 날씨는 비가 아니고 '바람'이라고 해야할 듯 하다.

일기 예보 아저씨가 (영국의 날씨 캐스터는 남자가 더 많다) "오늘은 바람이 제법 붑니다" 라고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만약 "오늘은 돌풍(gale) 조심하세요" 라고 하면....보통의 아가씨들은 바람에 밀려서 걸어다닌다 (과장아님요). 이런 날은 우산 박살나기 딱 좋다 - 실제로 아끼던 장우산을 괜히 가지고 나갔다가 박살나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우산의 필요성을 잘 못느낀다. 일단 우산 품질도 별로고 (어짜피 중국산). Oxford Street에 170년이 넘은 지팡이/우산 가게가 있는데, 우와! 170년! 하고는... 안가봤다. 멋진 우산들은 많이 걸려 있더만요. 그래서 우산은 한번도 안사봤다 - 친구들아 미안! 우산 살 돈 아껴서 술 사먹지롱! 하하


James Smith & Sons, Oxford Street, WC1A 1BL, 출처는 Telegraph. 옛날 모습인 듯 하다.


...그래서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우산을 잘 안 쓴다. 뭐 우산 쓰고 다니는 사람은 다 관광객이다라고까지 하는데... 그건 과장되었다, 그러나 확실히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쓴다. 사실 길도 좁아서 우산을 쓰고 다니면 서로 부딪혀서 걷기도 힘들다. 비가 와도 물을 뿌리 듯이 오거나... 많이 오더라도 오랫동안 내리지 않는 편이다, 이런 정도의 비는 일기 예보에 안 나오던가 '가끔 빗방울 날릴 수도 있겠네요'라고 일기 예보 아저씨들이 언급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잠깐 쓰던가... (야구 모자 쓰는 사람은 거의 미국인 아니면 한국인이다) 아니면 비를 잠깐 피하던가... 사실은 그냥 맞는 사람이 제일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제법 많이 올 때에도). - 그래서 같이 실내에 있으면 비 맞은 머리카락 냄새나 옷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서 괴로울 때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일기 예보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기온만 보면 되고, "오늘 100퍼 비옵니다." 이러면 작은 우산 하나 가져가면 보통 충분하다. 대부분의 날씨는, 햇살이 나다가도 - 비가 오다가도 - 다시 햇살이 비치고... 심지어 햇살이 눈부시면서 비도 온다. (검색창에 위에 소제목 대로 검색하시면 왜 그토록 날씨가 자주 바뀌는지에 대한 진지한 분석글들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주말 아침인데 나가볼까... 에이 비 올 것 같네, 늦잠이나 잘란다... 늦잠을 자고 나니 날씨가 화창하다. 에이... 뭐야 짜증 나게... 놀러 나갈걸... 빨래라도 해야겠다... 그리고 빨래를 널면 미친 듯이 비바람이 몰아친다.... 이런 미친!



날씨가 이렇다 보니... 방수 자켓(waxing jacket), 운동용 레인 자켓, 레인 코트를 즐겨 입는다. 영국집들은 대부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옷걸이가 많다 (보통 서양 집은 다 그런 듯 하지만). 자주 비를 맞으니 아마 집에 들어오자 말자 바로 걸기 위해서 생긴 관습인 것 같다. 세탁비가 한국보다 비싸니 자주 안 하기도 하지만, 또 빗방울이 언제 날릴지 모르니 세탁소에 맡길 생각이 안 든다. -우리나라 세탁소 아저씨들 감사합니다.


네 바로 그거예요, 제일 유명한 그 브랜드.  보통 사람들은 저런 핏 잘 안나옵니다...대부분 그냥 아저씨/아줌마가 됩니다... 미리 입어보고 사시길....출처는 브랜드 홈페이지.


기온은 약간 쌀쌀하다. 작년 여름은 이례적으로 안 더워서 15도 언저리에 머물렀던 것 같다. 열이 많은 나도 반팔만 입고 다니면 그늘에선 서늘함을 느꼈다. 신기한 것은 재작년 여름은 이상 기상으로 많이 더웠다. 그래도 30도를 넘는 날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웃을 일이 아닌 것이... 스코틀랜드에선 혹서로 돌아가신 노인분들도 나왔다.


대부분의 남자들에겐 그래서 영국 날씨가 좋은 점이 많다. 여름에는 안 덥고.. 겨울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 언저리에 머문다. 눈도 거의 안 오고... 다만 바람이 많이 부니 체감 온도는 좀 낮은 듯한데... 서울 날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자들에겐 조금 추운 날씨다. 봄여름이라도 가벼운 윗도리를 가지고 다니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든 냉난방을 한국처럼 미친 듯이 하지는 않는다. 요즈음 한국은 여름엔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겨울에는 시원한 음료를 마셔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 그럴꺼면 왜 우리 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좋은 나라라고 가르쳤던 걸까?




영국의 여름은 정말 좋다.


덥지 않고, 햇살은 따가워도 그늘에 가면 선선하다. 그늘에 누워서 음악 들으면서 책이나 보며 낮잠 자기엔 그만이다. 친구들과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면서 놀면 술맛이 절로 난다. 위도가  높은 나라다 보니 한 여름엔 9시까지 훤하다 - 보통 우리가 대낮 같다고 하는 데, 아니다. 대낮이다. 놀기에 최고다. 퇴근하고도 햇살 받으며 운동도 할 수 있고 피크닉도 즐길 수 있다. 세계에서 녹지 비중이 제일 높은 도시라고 한다. 비가 자주 와서 잔디가 아주아주 푸르게 잘 자란다. 런던 어디에 있던 앉아서 쉴 조그마한 가든이나 공원은 금방 찾을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 너무 벗고들 있어서 가까이 가기에 부끄러울 정도다. 점심시간엔 근처 직장인들의 식당이 된다.

 

여름의 Hyde Park. 출처는 Telegraph.

 

겨울은 으슬으슬한 바람에 비도 많이 내려서 좋은 계절이라 하기엔 어렵다. 대신에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 날씨다 (우울해지기에도 좋다는 뜻이다). 여름과는 반대로 세네 시면 어둑어둑해진다. 야경을 즐기는 사람, 특히 야경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을지도 모르겠다 - (저녁 식사 전에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걷는 것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겨울에도 잘 걸어 다닌다. 낮시간엔 5~10도 내외라 바람 때문에 조금 춥긴 해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밖이 잘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인터넷 잉여질이나 책이나 보면서 놀기에도 참 좋다.


다음 주면 부활절(Easter)이다. 다시 섬머 타임 (summer time)이 시행될 테고, 하루하루 해도 길어지고 있다. 또 빈둥거리기 좋은 날씨가 온다. 나만을 위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 음식이 그렇게 맛없다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