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기억할 만한 지나침

[5. 기억할 만한 지나침]



집 가까운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면서 근처 사는 수강생들과 자주 마주치게 됐다.

대형마트에서도 만나고, 동네를 산책하다가도 갑작스럽게 그들과 마주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5년 넘게 한 곳에서 강의를 했으니 근처에서 분기별로 내 수업을 들었던 분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이다. 덕분에 동네 유지가 된 것처럼 어디서든 인사를 하고, 동네에 얼굴 아는 사람 많은 인물이 됐다.

나는 혹시 인사하는 수강생을 알아보지 못하는 실례를 범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신기하게도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감사한 나의 기억력이여, 더 감사한 나의 눈썰미여. (나는 그 당시  보수를 받고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했고 일은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이었으니 애정으로 그들을 대하고 바라본 것 같기도 하다.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고 아직도 기억에 남으며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 분들이 많다.)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졸지에 민낯부터 풀 메이크업한 화장까지 폭넓게 공유하는 사이로 변해갔다. 장 보는 모습을 보며 저녁 메뉴를 추측하고 때론 공유하는. 가족과 산책 가는 모습만으로도 그날의 분위기를 짐작 가능한 멀고도 가까운 관계.



보고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데 하는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걷다 보면 사람들을 관찰하게 된다. 가장 먼저 표정이 보인다.  

고단하구나. 언짢구나. 기분 좋은 일이 있구나. 고민이 있구나.

혼자 공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오지랖이다.

난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혼자 누군가의 삶과 하루를 스쳐 지나간다.

저녁시간 아이들이 부탁해 마트에 나왔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고 "푸-" 한숨을 길게 쉬는 중년의 한 남자.

거나하게 취해 갈지자로 걷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하루는 즐거웠던 것일까 고단의 날들이었을까 생각하다 '술'때문에 버틴 날들일지도 모르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초코송이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왔다.

은행 앞에서 늘 작은 돗자리를 펴고 다듬은 파를 파는 할머니가 있다. 옆에서 보면 안쓰럽고 앞에서 보면 씩씩하다. 등이 굽어 쓸쓸해 보인다 생각하다 "얼마예요?" 물어보며 마주한 얼굴은 늘 활기차다.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굵고 큰 손. 파로 까매진 손톱을 보며 그녀의 삶을 생각했다.

난 폐지를 줍거나 나이 든 힘든 몸으로도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볼 때면 굴곡진 노년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 너무 힘든 삶이야."



그런데 지금은 그들의 삶 속에 삶을 향한 에너지가 남아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쓰러움이 아니라 존경스러움이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 친구와 함께 걷는 사람, 홀로 장바구니 밀차를 끌고 걷는  사람, 물건을 사는 사람 그리고 파는 사람.

그들의 표정 속에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그들의 삶이 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결이 있듯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