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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Sep 15. 2021

기대감소시대의 D.I.Y. 프로덕션은 이래도 될까 싶다

한국음악실연자협회 소식지 53호 원고

한국음악실연자협회 소식지에 들어갈 에세이를 요청받았다. 처음 요청하신 주제는 '코로나 시대, 인디뮤지션의 활동' 정도였다. 쓰다보니 너무 우울하고 답이 없어 약간의 협의를 거쳐 주제를 변경했다. 운영하고 있는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와 인디음악씬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손가는 대로 썼다. 음실련 소식지 전체는 다음의 링크에서 체크할 수 있다.


https://www.fkmp.kr/news/News/news5


1.


“본인은 돈 벌 생각 없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잠깐 머뭇거리다 이내 정정했다. “돈 벌고 싶어도 여기서는 돈을 벌 수가 없어요.” 우리는 인디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디씬이라 통칭하긴 하지만 실은 안에서도 각자의 방향이 갈린다. 상품성과 대중성을 중시하는 이들도 있고 반대로 시장을 부정하는 쪽도 있다. 뜬 사람도 있고 뜨고 싶은데 뜨지 못한 사람도 있고 뜨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인정욕구가 큰 사람도, 유유자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이도 있다. 이를 한데 묶어 씬(scene)이라 표현하는 것은, 그럼에도 보다 주체적으로 음악을 만들고 활동해나간다는―이른바 D.I.Y.스러운―애티튜드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디씬은 작다. 소위 라이브씬이나 밴드씬이라 부르는 곳에 오는 적극적인 관객의 수는 더 적다. 절대적으로 작은 관객의 수에 비해 창작자의 공급은 많다. 물론 그중 관심과 명성을 획득한 일부 창작자들은 손익분기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드문 경우지만.


“여기서는 돈을 벌 수가 없어요.”란 말에는 생략된 부분이 있다. “(이런 음악으로는)”이란 단서다. 애티튜드로서의 인디는 어찌 되었든 주체성과 연결된다. 어떤 음악을 만들고 들려줄지 결정하는 것은 창작자 자신이다. 그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창작자 자신이어야 한다. 트렌드가 무엇인지, 인기를 얻는 곡은 어떤 곡인지, 이목을 끄는 아티스트가 누구인지는 창작자도 대중도 안다. 이를 좇을지 말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은 창작자 본인의 몫이다. 모르겠다면 자기객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2.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를 설립한 건 2019년이다. 2년이 지났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부와 명예를 누린 적 없다는 뜻이다.


만들어진 계기부터 대단치 않다.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를 우연찮게 프로듀싱 하게 되었고―이 음반은 제17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음반 2개 부문을 수상했다.―그즈음 다른 아티스트들로부터도 프로듀싱 의뢰가 들어왔다. 개인 메일 계정에 일과 관련된 메시지들이 쌓이니 스트레스가 되었다. 메일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라도 이름이 있어야 하니 대충 붙였다.


이리 대단찮음에도 함께 일하는 아티스트가 불어났다. 2021년 상반기에는 1장의 정규 앨범과 2장의 EP, 2곡의 싱글을 냈다. 하반기에도 비슷한 규모의 작업을 발표한다.


우리의 초창기 슬로건은 “모두가 좋아하진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사랑에 빠질”이었다. ‘누군가’가 소수라는 것을 안다. 주로 취급하는 장르는 인디포크, 인디팝, 인디록이다. 대중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성을 가장 우선에 두고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자본과 인프라가 충분치 않으며, 설령 자본과 인프라가 있다고 해도 ‘이런 음악’이 대중적 성공을 거둘 것이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창작자의 아이덴티티다. 소수의 마음이라도 사기 위해선 아이덴티티가 정말 확고해야한다 믿는다. 이는 우리의 과제다.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성심을 다해 일한다. 이름은 아무렇게나 지어도 일을 대강하진 않는다.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치 않다는 건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지속하지 않아도 된다고, 음악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책임질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목숨을 걸지 않아도 성심을 다할 수 있고, 목숨을 걸지 않아야 재미가 있다. 재미가 없으면 하는 의미가 없다.


3.


무책임함의 장점 중 하나는 엉덩이가 가볍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 저예산인 탓에 리스크가 적으니 빠르게 시도하고 반응을 테스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일을 골라 할 수도 있는 것도 장점이다.


모두가 비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에 메일링 서비스를 만들게 된 것도 따지고보면 현실적이다. (오소리웍스는 뉴스레터 플랫폼 메일리를 통해 매주 《오일링》이란 매거진을 발행한다.) 비디오 콘텐츠는 경쟁자가 많고 품도 많이 든다. 이미 자리를 잡은 유튜버들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 대신 텍스트를 택했다. 인디포크, 인디팝의 장르적 특성 중 하나는 수려한 노랫말이다. 의도한 바 없으나 대부분의 멤버가 글쓰기에 강했다.


시대정신은 유튜브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텍스트를 좋아할 거야. 가설을 세우고 바로 시작해보았다. 주된 내용은 그저 사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육아일기를 연재하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새 이야기만 줄창 한다. 주변의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만화를 그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늘 등산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끝내지만 단 한번도 등산을 하지 않는 등산기를 연재한다. 이런 허술한 이야기들로 세상에, 5개월 동안 벌써 20호까지 냈다. 구독자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몇백 단위. 우리가 내는 대부분의 음반들이 그렇듯 성공하진 못했지만 실패한 것도 아니라고 우겨보기로 한다.


연초에는 기자회견도 했다. 이유는, 새해라면 모름지기 신년맞이 기자회견을 해야할 것만 같아서? 올해 발매될 타이틀이 많은 탓에 예고편 식으로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쇼케이스를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공연으로 풀기는 어려워 대신 인디 오디오 플랫폼 랏밴뮤를 통한 토크쇼로 가닥을 잡았다. 공연이 가능한 상황이었더라도 온라인 토크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 해보았으니 더 재미있을 것이고, 더 저예산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기왕 오디오로 진행하는 거, 일반적인 기자회견이나 쇼케이스와는 처음부터 다른 방향으로 기획했다. 라디오 경험이 많은 MC를 섭외하고, 스크립트를 짜고, 토크쇼처럼 편성했으며, 라이브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로 시작하는 등,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삽입했다. 실시간으로 청취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다. 이미 무료로 제약없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가 즐비한 세상이지만 프레스를 제외하곤 유료 입장권을 팔았다. 대략 백 명 정도의 청취자가 오갔다. 역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나쁘지 않은 정도로도 괜찮다고 생각해본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 까닭에 얼른 털어버린다. 지금의 재미, 그리고 어쨌든 누군가는 반드시 사랑에 빠질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자긍심으로부터 오는 성취감에 집중하기로 한다. 운때가 맞아 갑자기 동료 중 누군가가 스타가 되면 어쩌지? 잘 서포트 해줄 수 있는 좋은 곳으로 보내거나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커져서 규모 있게 서포트를 해야한다 생각한다. 다 망해버리면 어쩌지?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기대감소 시대의 D.I.Y. 프로덕션은 이래도 될까 싶다.


단편선(음악가,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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