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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Oct 29. 2022

최소주의―아마추어리즘―신서사이저―음악

이권형 3집 [창작자의 방] 라이너노트

* 쓴 것들을 올려두는 것을 잊고 있다가 뒤늦게야 한번에 대량 업데이트.



최소주의―아마추어리즘―신서사이저―음악

언제나 실패하는 이권형의 이상한 팝송 모음집 《창작자의 방》


이권형은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알려졌다. 권형이 처음 씬에서 포착된 것은 2016년, 컴필레이션 음반 《젠트리피케이션》에 애리와 함께 한 〈사랑가〉를 출품하면서다. ‘쫓겨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이 음반은 그 다음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젠트리피케이션》에는 이미 저명했거나 후에 보다 너른 인정을 받은 아티스트들도 많이 참여했지만, 권형은 상대적으로 널리 회자되진 않았다.


몇 곡의 싱글을 발표하며 시위현장이나 작은 공연장 등에서 소소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8년 낸 첫 싱글 〈수봉공원〉은 오르간과 행진곡을 연상시키는 드러밍이 주도하는 대곡이다. 여린 결의 목소리를 아마추어리즘과 프로그레시브 사이 어딘가의 비틀린 사운드가 감쌌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권형의 초기 음악에서 일관성 있게 추구되었다.


권형의 첫 번째 전환점은 인천의 포크다. 인천의 포크는 《인천의 포크》, 《서울, 변두리》, 《모두의 동요》 이상 세 장의 컴필레이션으로 구성된 프로젝트다. 권형을 포함해 파제, 전유동, 물과음, 예람, 천용성 등 주로 포크씬에 기반을 둔 여러 뮤지션이 참여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권형은 창작자이자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고향이자 활동의 핵심적인 무대였던 인천을 ‘변두리’, ‘주변부’ 등으로 정체화했다. (그것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나 〈고양이를 부탁해〉 등에서 언뜻 드러나는 인천 특유의 정서와도 맞닿을 것이다.) 컴필레이션을 내는 와중, 첫 번째 정규앨범 《교회가 있는 풍경》도 발표했다. 인천의 포크 시기를 지나며, 권형의 포지션은 무언가를 제안하고 디자인 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느슨하지만 끈끈한 동료 커뮤니티를 얻으며 활동의 반경도 확장되었다.


권형의 두 번째 전환점은 《터무니없는 스텝》이다. 권형의 두 번째 정규앨범인 이 앨범은 담고있는 시도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권형의 확고한 대표작이다. (권형은 이 앨범을 발표한 직후, 입대했다.) 《터무니없는 스텝》에 담긴 음악은 포크 음악이 아니며, 그래서 권형을 ‘포크' 싱어송라이터라 부르는 것도 더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앨범을 채우고 있는 것은 레게와 사이키델릭, 그리고 이국적인 무드의 연주들이다. 하지만 재료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과 구조, 배합의 방식이다. 앨범의 제목에 명시되어있듯, 이들은 종종 ‘터무니없’으며 난데없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교회가 있는 풍경》과 인천의 포크 프로젝트까지, 권형은 아마추어리즘과 프로그레시브를 받아들임에도, 비교적 스탠다드한 팝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스텝》부터 그러한 목표는 해체되기 시작된다. 팝 특유의 ‘드라마틱함’을 제공하는 기승전결의 내래티브는 소거되거나 뭉뚱그려진다.


권형의 세 번째 앨범 《창작자의 방》은 《터무니없는 스텝》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연장선에 있으나, 자신의 작법을 더욱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다. 직관적으로 인지되는 가장 큰 변화는 신서사이저의 활용이다.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대표되는 스탠다드한 밴드셋에 낯선 악기들을 활용해 이국적인 사이키델릭 무드를 만든 전작과 다르게 《창작자의 방》에서의 사운드는 대부분 프로페셔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다소 유아적인 인상의 신서사이저로 채워져있다. 《터무니없는 스텝》이 충분히 채워졌다면 《창작자의 방》은 매우 헐거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 결과물이 의아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이미 권형이 전작에서부터 무언가를 내래티브건, 국적이건, 뭐건 적극적으로 소거해왔기 때문이다. 《창작자의 방》에 담긴 음악들은 최소주의적이다.


선공개된 싱글 〈석촌호수〉에 참여하기도 한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은 자신의 책 『내역서 2』에서 “팝은 모든 장르를 흡수하는 유연한 태도이며 원하지 않아도 즐기게 되는 무언가”라 적고 있다. 접속 조사인 ‘~이며’를 기준으로 반을 가르면 전자는 팝의 이념, 후자는 팝의 기술적 목표에 각각 대응한다. 팝은 태도로서의 유연함을 추구하는 한편 기술적으로도 유연함을, 청자가 듣고 내래티브를 따라가는데 거슬림이 없는 유연함을 추구한다. 《창작자의 방》의 이상함은 팝의 이념을 수용하되, 팝의 목표에 관심이 없는 데서 기인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선율과 사운드를 재료로 삼되, 일반의 문법을 무시하고 이를 일기나 경수필을 쓰듯 마음가는대로 배치해 창작자의 비타협적 의도를 드러낸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아마추어리즘을 넘어 매우 적극적으로 아마추어리즘의 미의식을 추구한다. 마치 장인처럼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경계는 종종 무화된다. 장르, 관습의 경계도 자주 무너진다. 팝이 아니라고도, 팝이라고도 할 수 없는 흐릿한 경계로.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음반이다. 인천의 포크 프로젝트부터 《터무니없는 스텝》을 거치며 만난 여러 커뮤니티, 그리고 제대 이후 서울 - 부여를 오가며 새로 만나게 된 시각예술 기반의 동료들이 고루 참여했다. 특히 음반을 감싸는 아트워크 전반을 담당한 미술가 이려진의 헐겁고 무심하지만 인간적인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음반의 모든 면이 내키는대로 스케치한 듯한,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취향과 작업을 들여다본 이가 그린 음악과 그림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득한 것은 텅빔이다. 그 음악과 그림들 사이에서 텅빈 공간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일까. 그곳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을까. 마음일까, 자유일까, 사랑일까. 창작자의 방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창작자의 방》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 단편선(음악가 /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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